9회말 투아웃.
오랜 불황에 허덕이는 가요계를 표현하는 단어로 이만큼 딱 맞는 말도 없는것 같다. 100만장의 판매고를 넘기면서 밀리언셀러가 넘쳐나던 호황기를 지나 가요계는 찬바람이 '쌩'하다. 10만장만 넘어도 '대박'이고, 가수들은 무대보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가수는 있지만 가요는 없고, 전 국민이 열광하던 '국민가요'도 사라진지 오래다. 가요를 듣는 사람은 여전한데 음악은 듣지만 돈은 지불하지 않는, 수요는 있지만 수익은 없는 기현상이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최소한의 흥행 보증
불황인 가요계에 부는 새로운 풍토가 바로 리메이크(Remake.재창조)다. 사실 가요계의 리메이크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현상만은 아니다.
지난 2005년에는 이수영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담은 앨범 '더 클래식'을 40만장 이상 팔면서 리메이크 앨범의 상업성을 증명했고, 브라운 아이즈의 나얼이 김흥국의 히트곡 '호랑나비'를, 김범수가 조관우의 '겨울이야기', 박효신이 이선희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부르며 리메이크 붐을 주도 했다. 그리고 2007년 여름, 또 다시 리메이크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 몇 달간 발매된 음반만 살펴봐도 전성기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13인조 그룹 슈퍼주니어가 1997년 발표한 H.O.T의 히트곡 '행복'을 10년 만에 리메이크 했다. 이 곡은 SM엔터테인먼트의 소속가수들이 참여한 '07 SM타운 섬머 음반에 수록됐다.
여성듀오 투앤비는 2001년에 발표된 키스의 인기곡 '여자이니까'를 다시 불렀다. '여자이니까'는 아직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얻는 곡으로 남성 듀오 프리스타일의 지오가 랩을 더해 애절한 느낌을 살렸다.
씨야의 리드보컬 남규리는 영화 '못 말리는 결혼' OST에서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를 리메이크 했다. 정규 2집으로 돌아온 혼성그룹 타이푼은 남진의 '님과 함께'와 붐의 '예상 밖의 얘기', 터보의 '트위스트 킹'을 리메이크해서 담았고, 1대 란으로 활동했던 예인은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를 불렀다. 리메이크 열풍에는 선배 가수도 적극적이다.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선희는 디지털 음반에서 후배 가수인 팀의 '사랑합니다'와 김범수의 '하루'를 자신만의 창법으로 리메이크해 공개했다.
리메이크의 장점은 안전이다.
제작자이자 보아 백지영 하리수 등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 고영조 씨는 "대중에게 검증된 노래를 사용하는데다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 덕분에 특별히 홍보를 안 해도 수입으로 연결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편곡에 공이 들어가기는 하나 대체로 신곡의 30~40%선에서 완성할 수 있다.
◆모험보다 '안전빵'을 택하는 불황의 가요계
그러나 신선함이 떨어져 일정 수요 이상은 창출하지 못하고, 완전한 '대박'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대박'은 아니지만 일정 이상의 수익은 보장하는 그야말로 '안전빵'인 셈이다.
제작자들이 자꾸 '안전빵'에 몰리니 이제 아무도 작곡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다. 모험이나 새로운 시도 보다는 안전한 길만 찾아가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다. 일본 유명 가수의 곡이나 클래식 선율의 샘플링, 가요 리메이크 까지 이제 순수 작곡 가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제작자들은 아직도 리메이크에 거는 희망이 크다. '안전'이라는 매력적인 유혹을 뿌리칠 수도 없을 뿐더러, 익사 상태인 가요계에서 그나마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데 리메이크가 가요계의 구원투수가 될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조이뉴스24 박은경기자 imit@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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