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하반기 ‘한국영화 구원투수’로 불렸던 건 두 편이었다. ‘디 워’와 ‘화려한 휴가’. 두 영화는 철학도 문법도 소재도 관객도 달랐지만 구원투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영화는 사위어가던 한국영화에 횃불과도 같았다.
대중문화 가운데 영화계보다 힘든 것은 가요계다. 대중은 여전히 가요를 사랑하고 노래를 좋아하지만 한국 가요계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요계에 횃불로 등장한 것이 바로 서태지와 ‘텔미’다.
‘디 워’와 ‘화려한 휴가’가 한국영화의 구원투수로 불리며 그 영광을 독차지 하는 사이 그들에 비하면 빛이 바래버린 70편의 영화가 숨죽이고 있었던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디 워’와 ‘화려한 휴가’는 그 70편, 그리고 그 이전 한국영화의 유산으로 살찌웠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서태지와 ‘텔미’ 역시, 한 달이면 200~300장이 출시된다는 빛바랜 음반들과 가수들, 그리고 한국 가요를 자양분 삼았다.
그런데 수많은 영화와 가요가 이들 횃불을 살찌우고 자양분이 됐다고 해서 그것들의 우뚝 선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
서태지와 ‘텔미’는 좌표를 잃은 한국가요의 등불이다.
원더걸스가 부른 ‘텔미’는 순식간에 디워 못지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것을 돌풍이라 부르는 이도 있고, 중독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연예계 사건이 아니라 지금은 ‘사회적 현상’으로 보일 정도다. 여느 아이돌 그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디 워’가 한국 영화에 또렷한 족적을 남긴 것처럼, 텔미 또한 그렇다.
‘텔미’가 많은 아이돌그룹 노래와 달리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세대를 초월한 몰입 현상 때문이다. 10대와 20대는 물론이거니와 30~40대 또한 텔미와 원더걸스에 매료되는 것에 대해 ‘로리타 콤플렉스’부터 ‘복고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그 분석들 모두 일리가 있을 것이고,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텔미’가 우뚝하다는 점이다.
‘텔미’를 부른 원더걸스와 서태지 사이에는 분명 또렷한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의 우뚝함을 부정하기란 난감한 일이다.
그의 컴백 소식만으로도 대중은 열광하고 언론은 춤을 춘다. 언론들은 치열한 특종 경쟁 속에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그의 컴백 사실과 컴백 방법을 보도해야만 했고, 급기야 서태지 측이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음반을 파는 곳마다 그의 새 앨범을 예약하기 위한 팬들의 문의 및 주문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음반을 파는 매장 담당자들은 “마치 가요시장이 음반 중심이었던 과거로 회귀한 게 아닌가, 착각이 될 정도”라고 한다. 돈 계산에 빠른 기획사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한 듯 20억 원에 판권 계약을 했다.
이제 숙제는 이런 현상을 복기(復棋)하는 것이다. 영화인들이 지금 ‘화려한 휴가’와 ‘디 워’의 성공요인을 지속적으로 복기하고 있을 것처럼…. “못 살겠다”고 지금도 아우성치는 가요계가 할 첫 번째 일이 그것이다.
복기의 방법과 기술은 많겠다. 그런데 서태지 현상과 ‘텔 미’ 현상은 비슷한 모습이지만 성공의 길과 과정은 달라 보인다. 철학도 문법도 소재도 다른 ‘화려한 휴가’와 ‘디 워’가 나란히 성공하였던 것과 비슷하다.
예나 지금이나 서태지의 경우 특정한 노래로 대중을 몰입시킨 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가요사에 한 획을 그어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나고 창의적인 아티스트였음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 작품성과 흥행이 배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서태지가 입증하고 있다.
‘텔 미’를 부른 원더걸스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복기한다면 아마 원더걸스 멤버 5명의 얼굴이 빨개질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그들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고, 아직까지 원더걸스는 그 자체 때문보다 ‘텔 미’로 인해 존재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다만 원더걸스의 경우 신중현이나 서태지가 그랬듯 10여년 역사를 지닌 아이돌 그룹을 가장 한국적으로 소화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것이 광범위한 몰입을 가져오도록 한 핵심 아닐까.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 의해 이런 현상에 대한 복기와 분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중은 행복한 일이다.
조이뉴스24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