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TV 프로에서 시청률이 떨어지면 어느 영역을 맡고 있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출자든 작가든 출연자든….
그런데 그 고민이 잘 조명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카메라. 특히 시청률이 바닥을 기고 있는 음악 프로 카메라 감독의 고민은 무언가 색다른 점이 있을 게 분명하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카메라 워크가 무엇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요 프로라고 예외는 아닐 터이다. 그러나 가요 프로는 영화나 드라마와 분명히 다르다. 가요 프로는 어디까지나 노래가 중심이고 영상은 부가적인 요소인 게다.
카메라는 할 말이 있어도 쉽게 나설 수 없다는 이야기다. 대개는 연출자가 의도하는 대로 카메라를 움직이면 되는 일이고, 그 권한을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어떤 철학과 뜻은 있을 것이다.
최근의 음악방송 카메라 영역의 고민에 더 관심이 가는 까닭은 과거와 달리 요새 가수는 한꺼번에 떼를 지어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가요 프로에 등장하는 가수는 많아야 3명, 즉 트리오였다. 요사인 멤버가 10명 이상인 그룹도 있다. 그것을 카메라를 통해 감동적으로 포착하기란 실로 쉽지 않을 것이다. 감동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어수선해 짜증날 일이 더 많을 수 있다.
특히 TV의 경우 영화와 달라 풀숏보다 클로즈업이 중요하다. 가요 프로의 경우 더 그렇다. 가수의 얼굴 표정, 입 모양, 지그시 눈을 감은 모습…. 그런 영상들이어야, 노래가 갖는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수가 기타를 메고 연주하며 노래한다면 훑어 내리는 오른 손의 반복적인 동작과 코드를 짚어가는 왼 손의 섬세한 움직임까지 잡아줘야 한다. 그룹이라면 드러머의 열정적인 연주 모습과 베이스기타의 은은한 느낌까지도 살려줘야 한다. 때론 하모니카를 문 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래는 가수의 입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섬세한 동작을 이어갈 때 더 감동적일 수 있다.
그런데 요새는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만 10명 이상일 때도 있으니, 카메라가 들이대야 할 초점을 찾기가 난감해지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카메라를 만져온 한 음악방송의 카메라 감독은 “요샌 카메라 장비가 발전해 10명 이상의 가수가 나와도 풀숏을 잡을 방법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영상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음악 프로는 과거와 달리 현란한 영상을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며 “그게 오히려 노래의 감동을 줄이는 면이 없잖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 NHK 음악 프로의 경우 현란한 영상이 오히려 적다”며 “우리로 치면 ‘가요무대’와 같은 영상이 대부분인데 일본의 영상장비나 기술이 떨어져 그러지는 않을 것”라라고 설명했다. “일본 음악 프로의 영상에는 노래의 감동이 중심이라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가 내린 분석이다.
그의 말은 우리 음악 프로가 갖는 철학의 부재를 웅변하다.
시청률 경쟁에 내몰리고, 그것 때문에 주요 소비층이라 할 수 있는 10대 위주의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 음악 프로를 만들어 가는데, 오히려 그게 시청자 폭을 제한하고 시청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가요 프로의 영상을 책임지고 있는 그가 하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화려한 영상이 아닌 절제된 영상이 오히려 노래를 살린다”는 논리가 되는 셈이다.
그 말이 절대 진리는 아니라 해도 한번쯤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사진: KBS 음악 프로 '뮤직뱅크'의 한 장면]
조이뉴스24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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