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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의 딜레마…걸작이지만 불편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에 공감하지 못 한다면 잘못된 걸까?

24일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가 공개되자마자 대다수 언론과 평단이 호평을 쏟아냈다. '죄의식, 구원'이라는 거창하지만 뜬구름 잡는 어휘들이 등장하며 극찬 일색이다.

하지만 영화제나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신과 종교, 욕망과 번뇌, 동서양의 오묘한 조화 등을 고루 갖춘 '박쥐'는 시각에 따라 단순한 영화일 수 있다. '박쥐'의 제작보고회 당시 박찬욱 감독이 직접 단순명료하게 정리했듯 '박쥐'는 '여자 때문에 신세 망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존경받는 신부 상현(송강호 분)은 어느 날 병원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자진해서 실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고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의 아내 태주(김옥빈 분)의 유혹에 넘어간다.

상현은 신을 섬기는 가톨릭 사제로서 육체적 본능과 살인(때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살인이기도 하다)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갈등한다. 박찬욱 감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욕망과 도덕적 신념 사이의 딜레마를 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자 신부와 뱀파이어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한 인물에 덮어씌웠다.

그리고 송강호는 '박쥐'를 자신의 영화로 만들었다. 송강호는 '뱀파이어가 된 신부'의 복잡한 내면을 순간적인 표정, 뒷모습만으로도 표현해낼 정도다. 무거워지려면 한 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가끔 숨을 돌리게 하는 것은 박찬욱 감독의 유머이기도 하지만 송강호의 물 흐르는 듯한 연기와 관객들에게 '배우 송강호'가 주는 이미지 덕분이기도 하다.

화제가 되고 있는 성기노출 장면은 송강호에게는 모험일 수도 있었겠지만 박찬욱 감독이 송강호에게 준 선물이라는 느낌이다. '밀양'이 전도연을 위한 영화였다면 '박쥐'는 이 장면으로 송강호를 위한 영화가 됐다.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는 본의 아니게 공동 주연인 김옥빈과 조연으로 출연한 김해숙, 신하균이 소외되기도 했지만 김해숙과 신하균도 송강호 못지않게 늘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연기 능력자'들의 능력을 맘껏 보여줬고 김옥빈 역시 '박쥐'를 만나 '연기자'로 거듭났다.

영화작가적 재능이나 눈과 귀를 홀리는 압도적이고 빈틈없는 미장센과 음악 등 박찬욱 감독의 감각은 '박쥐'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하지만 (이쯤해서 딴죽을 걸어보자면) 박찬욱 감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뛰어난 감독이며 '박쥐'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이 될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나 여전히 불편함은 남아있다.

박찬욱 감독의 '핏빛' 딜레마, 죄의식, 구원 그리고 그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수단이 되는 과도한 욕망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또 상현의 욕망에 불을 지피는 '이브' 바이러스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나쁜 여자'의 악마성도 그러한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바이러스 때문에 뱀파이어가 되지 않았다면 태주로 인한 욕망에 사로잡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상현의 대사는 들어주기가 힘들다.

'박쥐'는 전작들에 비해 폭력성은 약하지만 여전히 강렬하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듯하다. '박쥐'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불편해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다음 작품을 (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궁금하게 하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조이뉴스24 유숙기자 rer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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