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이 '복덩이'라고 칭찬했던 이용찬이 시즌 두 번째 패전(3블론세이브)을 안았다. 속쓰린 역전패지만 달리 보면 이용찬으로서는 정신이 번쩍 든 좋은 계기일 수도 있다.
이용찬은 지난 2일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2-1로 리드하던 9회말, 임태훈의 바통을 이어받아 마운드에 올랐다. 1이닝만 잘 마무리하면 오승환(18세이브)과 구원 공동 1위에 오르고, 임태훈에게 11승을 안기며 다승 1위로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선두타자 이숭용을 볼넷으로 내보낸 게 화근이었다. 1점차 상황에서 김시진 감독은 강정호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고, 이용찬은 한 순간에 1사 2루라는 스코어링 포지션에 직면했다. 이어 강귀태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까지는 좋았지만, 아웃카운트 한 개를 남겨놓고 황재균에게 동점 적시타와 도루를 내주고, 잇달아 클락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주저앉았다. 두산으로서는 다 잡아놓은 고기를 그물에 담다 놓쳐버린 꼴.
이용찬은 위기에 몰리자 연신 진땀을 흘리며 모자를 쓰고벗는 등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제아무리 간 큰 이용찬이라고 하더라도 9회말 동점, 역전 주자를 내보낸 상황을 웃으며 맞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불을 지른 채 고개를 떨구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이용찬에게 이날 패배는 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꽤 오랜 동안 패전을 맛보지 않은 이용찬에게 다소 느슨해진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는 확실한 자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용찬은 시즌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와중에 한 차례 패전을 통해 정신을 번쩍 차린 바 있다. 4월 10일 잠실 LG전. 이용찬은 5-4로 앞서던 9회말 등판했지만, 불안한 투구와 수비실책까지 겹치며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페타지니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이라는, 클로저로서는 최악의 경험을 했다.
아직 마무리투수로 정착하지 않은 단계에서 이용찬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확연히 달라졌다. 어린 나이인 탓에 자칫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이용찬은 이틀 후 곧바로 LG를 상대로 세이브를 챙기면서 우려의 시선을 불식시켰다.
배짱좋은 성격과 패전의 경험은 이용찬에게 마무리 투수의 고난을 실감케 했고, 이후 그는 이 기억을 가슴에 품고 '무심투'로 24경기 동안 15세이브 무패를 기록했다. 물론 위기를 맞은 적도 있고, 타선의 도움도 받곤 했지만 이용찬이 그 때를 계기로 한층 성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김경문 감독은 히어로즈 패전 이후 "용찬이가 그 동안 잘 막았는데 질 때가 됐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아직 경험을 쌓고 있는 투수이기에 시즌 막판까지 100% 완벽투를 펼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은 이미 예상 속 전개였던 셈이다.(그날이 이날일 줄은 몰랐겠지만)
물론, 선발 이재우에 고창성-임태훈-이용찬으로 이어지는 '변형 KILL' 라인을 모조리 투입하고 패했기에 두산으로서는 힘빠진 하루였지만, 그만큼 이용찬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됐을 터. '블론세이브'를 넘어 83일만에 맛본 패전 투수의 경험으로 이용찬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있다.
조이뉴스24 권기범기자 polestar17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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