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정장 가슴팍에는 대전 시티즌 뱃지가 빛나고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 위에는 자줏빛에 대전의 엠블럼이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부임한 지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영락없는 대전의 사령탑이었다.
난파해가던 대전의 새 선장으로 부임한 대전 유상철(40) 감독은 23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FC와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19라운드를 흥분 없이 무덤덤하게 준비했다.
유 감독은 "선수단이 서서히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 같다. 의욕적이고 활기도 넘친다"라며 긍정을 노래했다. 취임 기자회견 때도 강조했던 '장벽 없는 소통'도 서서히 이뤄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선수들에게는 절대로 흥분하지 말고 경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대전은 전임 왕선재 감독이 해임된 뒤 두 경기에서 1-7, 0-7로 연속 대패하며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자신감이 떨어진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등 바쁘게 시간을 쪼개 사용하고 있는 유 감독은 "꿈을 꿀 시간도 없다"라며 감독 데뷔전 준비에 선수 영입 등 많은 일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내심 데뷔전 승리를 하면 더없이 좋을 터. 유 감독은 "동갑내기 골키퍼 최은성이 내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라며 승리로 데뷔전을 깔끔하게 마치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최근 리그컵을 포함해 18경기 연속 무승(6무 12패)을 기록중이던 대전은 유 감독의 새로운 지휘를 받으며 1승 수확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유 감독은 활동력이 좋은 중앙 미드필더 김성준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하는 등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급한 사정은 강원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5연패를 기록중인 강원은 정규리그에서는 1승이 전부다. 승리 내지는 무승부라도 해서 승점을 벌어야 했다.
찬스는 강원이 더 많이 잡았다. 전반 4분 권순형의 중거리 슈팅을 시작으로 28분 김영후가 이상돈의 코너킥을 머리로 연결했지만 왼쪽 포스트에 맞고 나오는 등 운이 따르지 않는 공격이 계속됐다. 대전은 최은성의 선방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하며 전반을 마쳤다.
후반 시작 후 대전은 거세게 강원의 측면을 압박하며 기회를 만들었다. 측면 공략은 적중했고 3분 김성준의 왼쪽 코너킥을 박성호가 헤딩 슈팅, 골키퍼에 맞고 나온 것을 조홍규가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선제골이 터지자 대전 선수들은 일제히 유상철 감독에게 달려가 안기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여유를 찾은 유 감독은 박은호, 박성호 등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들을 차례로 투입하며 리드 지키기에 온힘을 기울였다. 최은성이 선방하다 쓰러지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등 가열찬 시간이 흘러갔다. 최은성은 41분 강원의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내며 승리 의지를 더욱 불살랐다.
마침내 고형진 주심의 종료 호각이 울리자 긴장했던 유 감독의 표정도 풀어졌다. 동시에 육탄방어로 강원의 공격을 막아냈던 대전이 1-0으로 이기며 정규리그 13경기 무승(5무8패) 및 최근 18경기 무승을 마감하는 90분 드라마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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