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기자] 이 정도면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개막 후 한동안 그 누구도 롯데가 2위까지 치고 올라설 줄 몰랐다. 폭풍의 여름을 보내면서 후반기 막판에는 롯데의 2위가 어색하지 않게 됐지만, 사실 되돌아보면 격세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신임 양승호 감독이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양승호 감독은 사령탑 부임 첫 해 '롯데 자이언츠'를 페넌트레이스 2위로 이끌며 초보명장의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롯데는 4일 사직 한화전에서 선발 송승준의 5이닝 1실점 호투 속에 22안타를 작렬시킨 타선 대폭발로 20-2 완승을 거뒀다.
시즌 성적 70승 56패 5무, 승률 5할5푼5리. 끝까지 추격세를 잃지 않고 있던 SK가 이날 광주에서 KIA에게 0-4로 패하면서 롯데는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잔여경기가 2경기 남아있는 가운데 롯데가 전패하고, SK가 전승을 거둬도 순위는 뒤바뀌지 않는다.
2위를 확정지은 롯데는 이제 남은 한화와의 2연전을 편안히 보내고 이후 준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휴식과 함께 컨디션을 조율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숨고르기 시간을 벌었다.
양승호 감독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빛날 롯데의 시즌이었다. 전임 로이스터 감독이 지난 3년간 만들어놓은 토대를 최대한 잘 활용하면서 선수단을 무난하게 이끌었고, 중반 이후에는 스스로의 색깔도 조금씩 드러내면서 팀의 상승세를 유지했다.
특히 양승호 감독이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은 '형님 리더십'과 '사고의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양승호 감독은 친화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선수들과도 격식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등 감독의 권위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마음 편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선수들도 양승호 감독에게 거부감이 전혀 없어 팀 분위기는 화기애애 그 자체다. 다른 대부분의 구단 선수들이 감독 앞에서 긴장감을 표출하는데 비해 롯데 선수들은 덕아웃에서도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면 감독이라기보다는 '집안 형님'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기강 해이로 직결될 수도 있는 부분. 여기서 양승호 감독의 노련한 팀 운영이 빛을 발했다.
양 감독은 연차가 어린 선수들에게는 절대로 직접 야단을 치지 않는다. 선수단 전체를 이끄는 통솔권자가 직접 개입하게 되면 팀내 중간급 이상 선수들의 역할과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단이 어긋남 없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각 선수들이 경기력 외에 팀 내에서 연차에 따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양 감독은 굳게 믿고 있다.
이를 위해 양 감독은 주장 홍성흔을 비롯해 고참급 선수들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홍성흔 등 고참선수들만 따로 불러서 지적해 책임감을 부여했고, 이와 함께 선후배가 함께 있으면 선배의 체면을 차려줬다.
이런 '관리'가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고참 선수들에 이어 이대호, 강민호 등 중간급 선수들이 팀내 군기반장 역할을 해내면서 롯데는 자율 속에 스스로 기강을 잡아가며 화합을 이뤄갔다.
노련한 선수단 관리에 이어 양승호 감독은 사고의 유연성 측면에서도 칭찬을 받을 만하다. '소통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양 감독은 주변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 속칭 '귀가 얇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올 시즌 롯데에게는 이런 양승호 감독의 스타일이 그 무엇보다 필요했다.
부임 후 공격극대화를 위해 선택한 3루수 전준우, 좌익수 홍성흔 카드는 개막 한 달만에 과감히 포기했다. 로이스터 감독의 '노피어' 이상의 공격력을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결단이었지만, 정작 시즌 개막 후 오히려 해당선수들의 화력이 감소하자 양 감독은 "내가 잘못 생각했다"며 깔끔하게 과오를 인정했다.
사실 감독으로서 이러한 대목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자존심 문제로도 직결되는 부분인 탓에 구단 프런트도 언급하기가 힘들다. 자칫 감독이 구단의 간섭이라고 느끼게 될 경우, 이는 향후 심각한 내부 트러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 감독은 스스로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고쳐나갔다. 어찌보면 이러한 양 감독의 성격은 올 시즌 롯데의 2위를 이끌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초 선발진 난조에 사도스키의 등판마저 어려웠고 동시에 화력마저 기대에 못미쳐 양승호 감독은 한숨만 내쉬었다. 작전을 내도 수행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어이없이 무너진 경우도 잦았고, 롯데의 순위는 하위권에만 맴돌았다. 5월 잠시 반등세였지만 6월 다시 침몰했고, 이 때만 해도 그 누구도 롯데가 2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감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롯데는 7월 이후 폭풍의 여름을 보내면서 기어이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거머지는 쾌거를 연출해냈다. 1989년 단일리그 전환 후 페넌트레이스 첫 2위의 감격이다.(1999년에는 드림리그-매직리그 양대 리그로 치러졌다. 롯데는 드림리그 2위로 매직리그 1위인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한화에게 패해 공식적으로 최종 순위 2위로 기록돼 있다)
양승호 감독은 롯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령탑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성적을 기록했다. 롯데팬들은 이제 양승호 감독을 '명장'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양 감독은 어느새 '양승호구'에서 '양승호굿'으로 격상하며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자격을 갖췄다.
조이뉴스24 권기범기자 polestar17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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