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한국 K리그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를 꼽으라면 1998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선수의 등장과 함께 K리그도 뜨거워졌다.
그는 첫 등장부터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테크닉과 움직임에 팬들은 매료됐다. 그리고 실력만큼이나 화려했던 그의 외모에 팬들은 더욱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휘젓는 그를 향해 팬들은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정환(36). 그가 한국 축구에 등장함으로써 한국 축구는 더욱 멋지게 더욱 세련되게 발전했고, 팬들의 K리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높아졌다. 안정환의 등장으로 K리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을 수 있었고, 한국 축구에 실력과 외모를 동시에 갖춘 꽃미남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K리그에서 MVP에 오르는 등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거머쥔 안정환은 2000년 이탈리아의 페루자로 이적하며 한국 선수들의 유럽진출 선봉에 섰다. 이후 시미즈(일본), FC메츠(프랑스), 뒤스부르크(독일)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한국 축구의 자긍심을 전했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안정환 역시 화려했다. 안정환이라는 선수가 전하는 감동과 희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붉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이'월드컵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은 4강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한국 축구팬들은 태극전사들의 투혼과 열정에 감동받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정환은 그 4강 신화의 중심에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 예선 미국과의 경기에서 한 골,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최고의 명경기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역전 헤딩골을 작렬시킨 영웅이다. 그 짜릿했던 반지 키스 세리머니가 등장한 장면, '반지의 제왕'이 탄생한 장면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사상 첫 원정 1승을 거둔 한국의 토고전 결승골 주인공 역시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최종엔트리에 포함되며 세 번째 월드컵에 참가했다. 하지만 안정환은 남아공에서는 단 1분도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그렇지만 안정환이 월드컵에서 전해준 감동은 여전했다. 후배들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팬들은 또 감동을 받았다. 팬들은 역시나 안정환이라며 찬사를 던졌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끝으로 안정환과 국가대표팀의 인연은 끝났다. 그리고 안정환은 2011년 중국 다롄 스더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클럽에서도 더 이상 뛰지 않겠다며 팬들과 이별을 고했다. 새로운 팀 이적과 은퇴 사이에서 고민하던 안정환은 27일 결국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아름답게 내달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팬들은 큰 아쉬움을 전했다. 마지막 선수 생활을 K리그에서 해주기를 바랐다. 그와 함께 숨쉬며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런데 안정환은 현역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은퇴를 결정했다. K리그에서 뛰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국내팬들에게 전했다.
정말 간절할 때 무언가를 해낼 것만 같은 선수. 가장 필요할 때 마무리를 해줄 것만 같은 남자.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승부사. 결정적일 때 빛을 내는 해결사. 월드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한민국 스타. 바로 팬들이 안정환을 기억하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안정환을 보내주기가 더욱 힘들고 허전하다.
그렇지만 안정환 자신의 의사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안정환은 은퇴를 택했고 팬들은 이제 안정환을 놓아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너무나 큰 감동과 눈물, 희열을 안겨준 안정환이 있었기에 축구팬들은 즐거웠다. 그래서 팬들은 그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런 진심을 담아 이제 안정환을 가슴속에 간직할 때가 왔다. 팬들은 받았던 행복만큼 안정환의 행복을 빌어주며 그를 보내줘야 할 순간을 맞았다.
굿바이~ 안정환.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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