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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아니다"던 조 잭슨과 박현준, 둘의 차이


[김형태기자] # "아니라고 말해줘요, 조(Say it ain't so, Joe)." 법원을 나선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간판스타 조 잭슨에게 한 소년이 외쳤다. 1919년 월드시리즈를 뒤흔든 승부조작 사건. 거기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잭슨에게 가담 사실을 부인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잭슨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 말도 없었다는 얘기와 조작에 가담한 게 맞다고 시인했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사실 이 꼬마가 잭슨에게 애걸한 것도 꾸며낸 얘기라는 게 정설이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 미국 야구계의 여러 전설 가운데 하나다.

# "아니라고 말해줘요, 마이클(Say it ain't so, Mike)." 1993년 어느날. 시카고 선타임스 지의 1면에 이런 문구가 실렸다. 시카고 불스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이 아버지 사망의 충격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 따른 기사의 타이틀이었다. 70여년 전 잭슨과 꼬마팬의 일화에 빗댄 오마쥬가 명백했다. 세월을 한참 건너뛰었고, 종목은 다르지만 당대 최고 스포츠 스타에 대한 반응은 이처럼 대단했다. 대중의 간곡한 바람도 조던의 마음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농구 코트를 떠났던 조던은 야구 선수로 깜짝 변신한 뒤 앨라바마 시골에 은둔했다. 그는 이후 농구계 복귀와 은퇴를 반복했다.

# "그건 완전히 날조예요. 랜디스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잭슨을 희생양 삼은 겁니다." 3년 전 기자와 마주한 알렌 마슬리 씨는 흥분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그린빌. 조 잭슨이 야구계에서 영구추방된 뒤 돌아간 고향. 그곳에서 잭슨 기념 박물관을 운영하는 그는 잭슨의 무죄를 역설했다. 초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케니소 마운틴 랜디스는 법원의 무죄 판결에 관계 없이 '블랙삭스 스캔들'에 연루된 선수 전원을 야구계에서 영구추방했다. 야구계 정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바지 총재'가 아닌 실권을 가진 커미셔너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로부터 영입된 그로선 가장 목소리가 컸던 화이트삭스 구단주 찰스 커미스키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마슬리 씨의 주장이다.

# 메이저리그에서 추방된 잭슨과 동료 7명의 스토리는 이후 수많은 기사와 서적, 영화로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캐나다 출신 작가 윌리엄 패트릭 킨셀라가 쓴 소설 '맨발의 조(Shoeless Joe)'는 잭슨과 화이트삭스 동료들의 얘기를 가장 대중화시킨 수작이다. 훗날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 덕에 미국 중부의 한 시골 옥수수밭은 야구팬이라면 반드시 찾아봐야 할 '성지'가 됐다. 그래서인지 '추방된 8인'의 열정과 못다 이룬 꿈은 한이 되어 지금도 이곳저곳을 떠돈다고 미국인들은 믿는다. 아이오와주 듀버크 카운티에는 영화 촬영을 위해 조성한 야구장이 지금도 남아 있다.

# "저는 하지 않았고요, 잘 밝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기조작 의혹을 받고 있던 박현준은 당당하게 말했다. 돈을 받고 고의 볼넷을 내줬다는 의혹을 그는 부인했다. "아니라고 말해달라"던 팬들의 바람에 그는 "아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결백하다던 그의 주장은 불과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자신의 가담 사실을 시인했다. 돈 수백만원에 '프로 선수의 영혼'을 팔았다는 원성을 받고 있는 그는 다시는 한국 야구장에 서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어온 소속 구단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클린 스포츠'라고 자부해온 한국 야구계의 체면도 구겨졌다.

# 90여년 전 잭슨과 현재 박현준의 처지에는 차이가 있다. 한 쪽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고 다른 쪽은 조작 가담 사실을 인정했다. 2차례에 걸쳐 5천달러(약 600만원)를 주겠다는 유혹을 거절한 잭슨과 달리 박현준은 2차례 고의 볼넷에 6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법원의 유·무죄 최종 판단 여부를 떠나 돈을 받고 경기를 조작했다는 의혹 만으로도 선수 생명에 치명적이다. 설사 무죄가 인정되더라도 주위의 의심어린 시선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냉정히 바라보면 둘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잭슨이 경기의 도덕성을 훼손했다는 증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1999년 미국 의회는 이런 점을 들어 잭슨의 복권을 메이저리그에 요청하기도 했다. 반면 박현준은 한국 야구의 자부심에 상처를 냈다. 이유야 어쨌든 대가를 받고 경기를 조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할 말이 없다. 더구나 그는 대중을 향해 "한 적이 없다"고 당당히 외쳤다. 그의 결백을 믿어온 야구 관계자와 팬들의 마음에 두 번이나 생채기를 냈다.

#소속팀 LG 트윈스는 6일 박현준을 퇴단 조치했다. 박현준에겐 야구계 영구제명이란 가장 무서운 벌이 기다리고 있다. 야구판에서 추방된 잭슨은 고향 그린빌로 돌아갔다. 야구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문맹이었던 그는 세탁소와 술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프로 구단에 몸담을 수 없었던 탓에 지역 사회인 야구팀에서 격이 다른 선수들과 뛰는 것으로 야구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야 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의 반전'을 경험한 박현준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뒤늦게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왜 몰랐단 말인가.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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