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현역 시절 최고의 멀티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던 대전 시티즌 유상철(41) 감독은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 자신감이 넘쳤다. 객관적 전력은 다른 팀에 비해 나을 게 없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강등 1순위' 시선도 발로 차버릴 기세였다.
그런데 시즌 막이 오르고 뚜껑을 여니 유 감독이 웃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 스스로 "경기력은 나쁘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패한다"는 것이다.
7일 부산 아이파크전은 대전으로선 5연패를 마감해야 했던 중요한 일전이었다. 유 감독 스스로 "더 이상은 안된다"라며 배수의 진을 쳤다. 공격수 정경호를 플랫3의 스위퍼로 내리는 극단적인 전술까지 시도했다. 정경호의 수비수 전환은 공격 옵션 하나를 잃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었다.
유 감독의 전략은 나름대로 먹혀들어갔다. 부산은 정경호가 조율하는 대전 수비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며 빈공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대전 공격은 역시 문제를 드러냈다. 남궁도와 후반 교체 투입된 케빈 오리스가 고립되는 상황이 빚어졌고, 결국 0-1 패배라는 쓴맛을 봤다. 6연패와 1득점 12실점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늘 정상만을 맛보고 살았던 유 감독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선수들에게 "지난 5경기는 잊고 개막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자"라고 했지만 경기 뒤 공식 인터뷰에 나선 그의 표정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굳어버렸다. 어떤 방식으로든 승점을 벌기 위한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대전의 최선참 정경호도 마찬가지, 그는 "미치겠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준비를 잘했고 마음가짐도 달랐는데, 이게 경험의 차이인 것 같다"라며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정경호는 지난해 강원에서도 시즌 초반 최악의 행보를 경험했지만 그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당시는 강원의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기에 대전에서의 경험은 더욱 쓰리다.
사령탑과 최선참의 흔들림은 어린 선수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익명의 A선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돌아버리겠다. 축구를 해오면서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민망할 정도다. 관두고 싶을 기분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구단은 구단대로 괴롭다. 선수들에게 힘을 쏟아줄 팬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지난 세 시즌 초반 3차례의 홈경기 관중은 2만5천808명이었다. 적어도 한 번은 1만5천명 이상이 들어차는 경기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세 경기 평균 4천816명에 불과하다. 실집계를 시도하고, 인천 유나이티드전 마스코트 폭행 영향으로 서포터석 두 경기 폐쇄 징계를 받은 영향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시즌 초반 관중이 몰리는 대전 팬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최악의 상황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골대에 막걸리라도 뿌리라는 취재진의 제의에 "정말 그렇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괴롭지만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된다. 유상철 감독과 구단 프런트 모두 흔들림없이 첫 승을 위해 힘을 쏟겠다는 각오다. 유 감독은 "선수들이 빨리 컨디션을 찾는 게 급하다. 부산전에서 수비 안정을 보였던 만큼 공격과 미드필드의 연결 고리를 찾겠다"라고 말했다.
정경호도 마찬가지. 그는 "지금은 선수들에게 윽박지르거나 강압해서 될 상황이 아니다. 최대한 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일단 한 경기만 이긴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모르는 일"이라며 모든 것을 다 잊고 분위기를 쇄신해 첫 승 사냥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이뉴스24 대전=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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