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KIA가 침체에 빠져 있지만 바꿔 말하면 이제 치고 올라갈 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요. 지금 잘 나간다고 하지만 언제 삐끗할 지 모릅니다."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27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그는 조심스런 반응을 내보였다. 최근 6경기서 5승으로 단숨에 공동1위로 뛰어오른 기쁨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마도 며칠 전부터 갑작스레 걸린 감기 몸살의 후유증 때문일 지 모른다. 지난달 장기간에 걸친 해외전훈을 마치고 돌아온 뒤 지독한 몸살에 시달린 뒤 40여일 만에 다시 찾아온 증세다.
소속팀 두산이 순풍을 타고 있음에도 사령탑으로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음을 방증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요새 거의 매일 타순 조정에 몰두하고 있다. 계속 그러면 안되는데…"라며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인정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과 함께 언제 상승세가 꺾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뒤섞인 탓에 몸에 이상이 생긴 셈이다. 매사가 긴장인 프로야구 감독의 피곤한 한 단면이다.
상대를 결코 얕볼 수 없다는 김 감독의 우려대로 이날 KIA전은 승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기였다. 팽팽한 투수전이 경기 내내 이어지면서 양팀 덕아웃은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KIA 선발 서재응의 절묘한 제구에 두산 타자들은 좀처럼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3회와 4회를 제외하고 부지런히 주자가 출루했지만 득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두산도 선발 이용찬의 역투가 이어진 덕에 경기는 6회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0의 행진이 계속됐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투수전은 역시나 큰 것 한 방으로 갈렸다. 승부의 물줄기를 바꾼 인물은 두산 주장 임재철이었다. 앞선 두 타석서 침묵한 그는 경기 후반 장쾌한 홈런 한 방으로 팀에 승리를 안겼다.
0-0으로 팽팽하던 7회말 2사 뒤 윤석민이 좌전안타로 기회를 열자 임재철은 우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를 응시한 그는 서재응의 129㎞ 투심을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당겼다. 방망이에 정통으로 맞은 공은 좌측 노란색 파울폴 상단을 휘감으며 관중석으로 빨려들어갔다. 투런 홈런.
승기를 잡은 두산은 8회 이혜천, 9회 프록터를 잇달아 구원 투입해 2-0 승리를 확정했다. 이로써 두산은 최근 3연승을 이어가며 선두를 고수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김 감독도 승리가 확정되자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적어도 이날 밤엔 숙면을 취할 수 있을 듯했다.
김 감독은 경기 뒤 "(이)용찬이가 오늘 선발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투구수가 많았지만 7회까지 잘 던져줘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면서 "'타격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임)재철이의 장타가 때맞춰 나와줬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결승홈런의 주인공 임재철은 "두번 범타로 물러나자 3번째 타석에 앞서 감독님이 타임을 부르셨다. 교체될줄 알았는데, 그냥 들어서게 됐다"면서 "무조건 친다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간 안타가 없어 가족들과 감독님, 코칭스태프, 팀원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나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참 다행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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