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은 여러가지 의사 결정을 내린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것도 감독의 몫이다. 물론 결정에 따른 책임도 감독에게 있다.
한 번 내린 결정을 뒤엎는 것 역시 감독에게 주어진 선택지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이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리즈의 마무리투수 전향 카드를 철회한 것이다.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를 마친 뒤 귀국해 감독 취임 이후 가장 큰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선발로 11승(13패)을 따낸 외국인 투수 리즈를 마무리로 쓰겠다는 결정이다. 뒷문을 확실히 잠가 전체적인 팀 전력을 안정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최고 구속 160㎞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는 리즈는 분명 매력적인 마무리 카드였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부터 리즈를 마무리로 써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 리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로 그 자리를 메워야만 했다. 그만큼 '마무리 투수'는 LG의 최대 과제이자 오랜 기간 앓아온 고질병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리즈의 마무리 전향은 실패로 끝났다. 리즈는 시즌 7경기에 나와 2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13.50을 기록했다. 매번 불안한 등판이 이어졌다. 13일 KIA전에서는 연속 16개의 볼을 던지며 볼넷 4개로 3실점, 26일 넥센전에서도 연속 3개의 볼넷으로 역전의 빌미를 제공하며 패전투수가 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세이브는 1위를 달렸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형편없는 마무리 투수였다.
김기태 감독은 고심끝에 27일 리즈를 2군으로 내려보내며 더 이상 리즈는 마무리 투수로 뛰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리즈는 당분간 2군에서 필요한 훈련을 받으며 선발로 전환하게 된다. 그렇게 김 감독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가장 야심차게 준비했던 카드를 포기했다.
결정권자가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인정하고 바꾸느냐, 그렇지 않고 밀어붙이느냐에 따라 조직의 성패가 좌우된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카드라는 것은 선수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감독이 고집을 부리게 되면 그 때부터 선수들과의 신뢰가 깨지게 된다.
지난해 모범 사례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신임 감독이던 양승호 감독의 이야기다. 양 감독 역시 롯데의 지휘봉을 잡은 뒤 야심차게 개혁을 추진했다. 중견수로 자리를 잡아가던 전준우를 3루에 배치하고 3루수였던 황재균을 유격수로 돌렸다. 지명타자였던 홍성흔을 좌익수로 출전시켰고 중견수에는 수비가 좋은 이승화를 기용했다.
공격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지난 시즌 초반 롯데는 바뀐 포지션으로 인한 혼란을 겪었다. 전준우, 홍성흔은 수비에서 어려움을 느끼며 타격까지 침체에 빠졌고, 이승화는 좀처럼 안타를 치지 못했다. 결국 양 감독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 수비 대형을 원상복귀 시켰다. 그 때부터 롯데는 바닥을 치고 올라서기 시작했고,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칠 수 있었다.
LG는 올 시즌 최약체라는 주변의 평가를 비웃듯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리즈가 볼넷을 남발하며 넥센에 7-9로 대역전패를 당한 다음날 곧바로 롯데에 20-8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모습에서 만만찮은 저력을 느낄 수 있다. 8승6패로 공동 3위 자리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의 페이스만 잘 유지한다면 4강에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즈의 마무리 카드를 포기하는 것이 전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리즈가 선발로 복귀하게 되면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선발진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어떻게든 마운드를 개편해 뒷문 단속까지 성공적으로 이룬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기태 감독은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지휘봉을 잡았다. 이제 겨우 발걸음을 내딛는 초보감독이다. 오랜 경력의 감독들도 실패를 거듭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야구다. 실패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실패를 인정하고 다음 해답을 찾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LG의 올 시즌은 충분히 희망이 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