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한국 프로야구의 독특한 문화 하나가 있다. 상대팀 선수들끼리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경기 전 원정팀 선수가 홈팀 라커룸을 찾아 정답게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쉬는 날 함께 어울려 식사도 한다. 경기 중에는 분명 '적'이지만 그 외에는 다르다. 각종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있는 한국 야구계의 독특한 풍경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선-후배요, 형-동생이다.
한국 무대에 첫 발을 내디딘 외국 선수들은 이런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두산 베어스의 '신입생' 스캇 프록터(두산)도 그 중 하나다. 프록터는 최근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떻게 상대팀 선수가 경기 전 다른 팀 클럽하우스를 찾을 수 있는가. 같은 야구장을 쓴다지만 LG 와 두산 선수들도 그런 점에선 장벽이 없어 보인다"며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상대팀은 반드시 꺾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상대의 베이스캠프인 클럽하우스 출입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혹시나 구단 내부 정보가 새나갈 수도 있다. 심지어 심판도 적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1994년 갓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한화)는 시범경기 등판 때마다 한국식으로 주심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몇몇 다저스 선수들은 "그들(심판)도 적인데, 왜 저러는 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한 마디로 '우리편' 빼고는 다 믿을 수 없다는 거다.
프록터는 지난해까지 미국 땅에서만 야구를 해왔다. 소속팀 구분 없이 어울리는 한국 야구장의 풍경이 생소하기 마련이다. 그가 더욱 놀란 것은 외국 출신 선수들마저 '한국화' 됐다는 데 있다. 프록터는 "LG의 주키치가 우리 라커룸을 찾을 때가 가끔 있다. 그 때마다 내 동료인 니퍼트와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다"며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아직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상대를 해주지 않았더니 주키치는 나만 보면 기분 나쁜 표정"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프로페셔널하다는 칭찬이 자자한 프록터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대인 관계가 원만하다는 평을 받는다. 두산 동료 투수들은 "전혀 외국 선수 같지 않다. 고기 회식도 쏠 줄 알고, 함께 뭉쳐서 잘 해보자며 다독이는 모습이 여느 한국 고참과 다를 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6일 LG와 두산은 잠실에서 경기를 했다. 당시 LG 선발 투수로 나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한 주키치는 경기 후 니퍼트와 가족 동반 모임을 가졌다. 마침 그 날이 니퍼트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록터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치열한 접전 끝에 두산이 3-5로 재역전패했기 때문일 수도, 상대팀 선수와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한국식 문화가 생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 이유가 됐을 지도 모른다.
스스럼 없이 한국식 문화에 동화된 주키치와 니퍼트는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뛴 '2학년'이다. 아직 첫 학기도 마치지 않은 프록터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 무대 선배들이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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