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롯데 양승호 감독은 2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경기를 앞두고 한 가지 고민을 했다.
전날 경기에서 마스크를 썼던 강민호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최근 두산 베어스에서 유니폼을 바꿔입은 용덕한에게 포수 자리를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날 선발 투수로 예고된 쉐인 유먼이 걸렸다. 양 감독은 "유먼은 평소엔 장난도 잘 치고 웃고 그러는데 등판하는 날은 다르다"며 "말수도 적어지고 민감해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유먼은 이날 경기 전 덕아웃에 조용하게 앉아 팀 동료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양 감독은 유먼을 배려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용덕한과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게 하기보다는 그동안 익숙해 있는 강민호에게 안방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유먼은 이날 3회까지 SK 타선을 상대로 삼진 2개를 포함해 1안타 1볼넷만 허용하고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그런데 4회말 수비에서 나온 실책 하나가 유먼을 허탈하게 했다.
2-0으로 앞선 가운데 4회말 유먼은 안타 두 개와 볼넷 하나로 무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박정권, 김강민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워 투아웃을 잡았다.
이어 타석에 나온 조인성은 유먼이 던진 2구째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구는 마운드 쪽으로 높이 떴다.
이 때 유먼은 3루수 황재균에게 타구를 잡으라고 사인을 냈다. 그런데 1루수 박종윤도 동시에 공을 잡기 위해 뛰어왔다. 박종윤이 타구를 잡겠다고 콜을 했지만 황재균이 바로 앞까지 달려와 있었고, 순간적으로 서로 미루다 모두 공을 잡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박종윤의 실책으로 기록된 이 타구에 SK는 두 명의 주자가 순식간에 홈을 밟아 2-2 동점을 만들었다.
어이없이 실점을 한 유먼은 잠시 흔들렸다. 안치용을 볼넷으로 내보내 다시 2사 만루가 됐다. 유먼은 로진백을 마운드에 내던지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유먼은 바로 감정을 다스렸다. 최윤석을 3루수 뜬공으로 잡아내 추가 실점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유먼은 이후 안정을 찾고 8회 1사까지 1안타 2삼진으로 SK 타선을 잘 막아냈다. 그는 105구를 던진 뒤 마운드를 김성배에게 넘기고 내려왔다. 7.1이닝 동안 2실점했지만 물론 자책점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볼넷 3개와 4안타를 허용했으니 삼진 6개를 잡아내는 등 호투를 했다. 그 사이 롯데 타선이 7회말 4점이나 내줘 유먼은 시즌 5승(2패)을 챙길 수 있었다.
한편, 롯데는 유먼이 교체돼 물러남과 동시에 포수 강민호까지 용덕한으로 바꿔 강민호를 쉬게 해줬다.
양승호 감독은 경기 후 "유먼이 잘 던졌다. 흔들릴 수 있는 위기도 있었는데 그 고비를 잘 넘겼다"고 칭찬했다. SK 이만수 감독도 "유먼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유먼의 호투를 인정했다.
이날 결승타를 친 김주찬은 "유먼에게 꼭 승리를 챙겨주고 싶었다"며 "유먼이 야수 실책으로 동점을 내줬는데 4회말 수비가 끝난 뒤 덕아웃에서 선수들과 모여 '오늘 만큼은 우리가 승리를 챙겨주자'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유먼도 "4회초 수비 실책 상황에서는 솔직히 흥분했다. 좌절도 했는데 금방 잊어버리려고 했다"며 "실수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이미 그 순간은 지나가버린 일 아닌가. 경기에만 다시 집중하려고 했다. 동료들이 많이 격려를 해줬다. 무엇보다도 오늘 팀이 이긴 게 정말 기쁘다"고 웃었다.
조이뉴스24 문학=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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