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tvN '응답하라 1997'의 첫방송은 깨알같은 복고 아이템들의 향연이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브랜드부터 추억의 음료 광고까지, 브라운관은 십여 년 전 대한민국 청춘의 아이콘을 충실히 재현했다.
남녀 주인공들은 1997년 부산과 2012년 서울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이끈다. 30대가 된 현재와 열여덟이었던 과거를 오가는 교차적 서사 속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지금과 옛날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한다. 드라마의 곳곳에서 차용된 노래, 패션 아이템, 팬덤 문화를 상징하는 소품들은 기대보다 더욱 사실적이었다.
극중 윤제(서인국 분)의 생일선물로 등장한 시대별 유행 아이템들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아디다스, 게스, 이스트팩 등 브랜드 자체가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당시의 기억을 반갑게 끌어올린 셈이다.
안재욱, 최진실 주연의 MBC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를 차용한 지점도 폭소를 자아냈다. 극중 음향으로 삽입된 추억의 음료 '깜찍이 소다' 광고와 '만나면 좋은 친구'로 시작하는 문화방송 시그널송은 추억의 무게를 더했다.
주인공 시원(정은지 분)을 중심으로 펼쳐진 1세대 팬덤에 대한 에피소드도 흥미로뤘다. TV 프로그램이 스타를 만나는 유일한 매체였던 당시, 팬들은 소장을 위한 녹화에 열을 올렸다. 자칫 실수로 '오빠들의' 소중한 장면들이 담긴 녹화 테잎에 새 프로그램이 덮어씌워지기라도 했을 때, 극중 시원처럼 '멘붕'을 겪었던 이들도 적지 않았을 터다.
H.O.T를 상징하는 흰 빛깔의 우비와 풍선은 물론이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한 입금증까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들이 브라운관을 실감나게 메웠다. 시원과 같은 세대,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던 시청자들에겐 분명 색다른 재미였을 것이다.
H.O.T의 광팬인 시원은 라이벌 그룹이었던 젝스키스를 남몰래 흠모한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같은 아이돌 그룹을 추종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원과 그 친구들의 모습은 아이돌 팬덤이 또래 문화의 굵다란 축으로 작용했던 시점을 구체적으로 환기했다.
스타들의 사진이 가득한 틴에이저 잡지를 펼쳐 앞면과 뒷면을 세심히 살펴 나눠 갖는 모습, 혹여 구겨질까 자를 대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오려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1세대 팬덤에 발을 담갔던 시청자들의 '폭풍 공감'을 자아냈다.
시원의 가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체 제작 필통 역시 추억 속의 소품. 하드보드지에 도안을 그려 틀을 만들고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으로 겉면을 둘러싼 필통이었다. 녹화 중 실수로 H.O.T가 출연한 '스타다큐'를 지워버린 윤제를 향해 숫자 4가 가득 찍힌 저주의 호출을 날리던 시원의 행동은 삐삐의 추억을 되살렸다.
2012년 현재는 삐삐 대신 스마트폰이 젊은이들의 곁을 지키고, 인터넷 뱅킹의 등장으로 입금증의 필요가 사라진 시대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스타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으니 '녹화'란 '팬질'에 필요치 않은 노동이다. 그러나 주인공들과 함께 과거를 보냈고 또 현재를 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응답하라 1997'은 아득해진 과거로의 반가운 초대인듯 하다.
한편 지난 24일 방송된 '응답하라 1997'은 평균시청률 1.2%, 최고시청률 1.8%(TNmS리서치, 케이블 유입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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