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역시 원정팀의 무덤이었다. 10만 관중의 광적인 응원이 더해져 더욱 그랬다.
17일 새벽(한국시간) 한국-이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4차전이 열린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 이미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경기장을 찾은 이란 팬들의 발걸음으로 인근 도로는 극심한 정체에 시달렸다.
경기장 입장권은 이틀 전 10만장이 다 팔려나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매표소 앞에 몰려들어 흥정을 하며 어떻게든 경기를 보기 위해 애썼다. 일부 관중들은 기어이 입석표를 구매해 들어오기도 했다.
대관중이 몰리는 만큼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한국 취재진의 차량은 이란 혁명수비대로부터 네 차례나 확인을 받은 뒤 어렵게 미디어 출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참 이른 시간에도 경기장 안은 이미 절반 가까이 관중으로 메워져 있었다. 대형 엠프를 동원해 이란 최신 유행가를 틀어놓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들은 한국 사진기자들이 트랙에 등장하자 일제히 야유로 격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이란 관중의 응원도구도 다양했다. 소형 이란 국기는 기본이요, 대형 국기를 몸에 두르고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이란 유명 가수가 직접 응원단장으로 나서 구호를 외치면 알아서 나머지 관중이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본부석 관중석의 관중이 "남자답게! 이란!", "이란! 오늘 어떻게 플레이할까. 상대의 골문을 찢어버리자"라는 구호를 외치면 건너편 관중석에서 받아주는 조직적인 응원이 이어졌다.
이들은 기자석에 있는 한국 취재진을 발견하자 1996 아시안컵 8강에서 6-2로 이겼던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듯 손가락을 펴 6-2를 표시했다. 이도 모자랐는지 종이에 6-2를 적어 흔들며 아자디 스타디움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며 기세를 드높였다.
경기 시작 50분 정도를 남기고 정성룡(수원 삼성), 김영광(울산 현대),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등 세 명의 한국 골키퍼와 지원 스태프가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더 큰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곧바로 이란 선수단이 등장해 몸을 풀자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우렁찬 함성이 터져나왔다.
잠시 후 다시 야유가 나왔다. 한국 교민 등으로 구성된 총 300여명의 원정 응원단이 북쪽 스탠드에 자리를 잡은 것, 양쪽에 군인들이 둘러싸 보호막을 형성한 가운데 한국 응원단의 일당백 응원전이 시작됐다. 어렵게 공수해온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미약하지만 '대~한민국'을 외쳤다.
경기 시작 후 한국의 세트피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란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기성용이 볼만 잡으면 휘파람을 불어대며 흔들어놓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후반 10분 마수드 쇼자에이가 오범석에게 태클을 가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관중석 분위기는 급격하게 경직됐다.
그러나 후반 29분 자바드 네쿠남의 선제골이 터지자 10만 관중의 기가 들끓듯 살아났다. 이에 발맞춰 안드레닉 테이무리안은 그라운드에 넘어지며 시간을 끌며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한국으로선 답답한 시간이 흘러갔다. 점점 남은 시간이 줄어들자 응원의 위력에 한국의 기도 눌러버린 인상이었다. 서두르다 어이없는 볼처리가 이어졌다. 10만 대군 앞에 수적 우위도 소용없이 안타까운 90분이 흘렀고 한국은 0-1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