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드라마부터 생방송 쇼까지, 2012년은 케이블 TV의 웰메이드 콘텐츠들로 넘실댄 해였다. 특히 톱스타 없이도 이슈몰이에 성공한 일부 프로그램들은 양질의 아이템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 시청자와 통하는 지름길임을 증명해 보였다. 과감하고 발칙한 소재, 신선한 접근은 케이블 채널을 TV의 변두리에서 꺼내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소재·캐스팅, 모두 신선했다
올해 케이블 드라마계 단연 최고의 이슈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tvN에서 방영돼 열풍을 일으킨 '응답하라 1997'이었다.
첫 주연 연기에 도전하는 신예들을 비롯, 대중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배우들을 기용해 의문을 자아냈던 이 드라마는 생생한 캐릭터를 살려낸 신인 연기자들의 활약으로 더욱 빛이 났다. KBS 2TV '사랑비'로 연기 첫 발을 뗐던 서인국은 '응답하라 1997'을 통해 명실공히 브라운관 블루칩으로 떠올랐고,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정은지 역시 성공적인 연기 도전을 마쳤다.
정은지, 서인국, 이시언, 호야 등 실제 경상도 출신 배우들을 활용해 실감나는 사투리 연기를 선보인 것은 손에 꼽을만한 성공 요인이었다. 주인공 윤제 역의 서인국과 시원 역의 정은지가 펼친 달달한 로맨스 연기도 몰입을 도왔다.
섬세하고도 흥미로운 고증으로 1990년대를 재현해낸 것 역시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의 시청자들은 자신이 실제 경험했을 법한 현실감 넘치는 에피소드들에 한껏 공감하며 울고 웃었다.
그간 1970~1980년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시대극들이 브라운관 속 복고 열풍을 견인했다면 '응답하라 1997'은 새로운 소재로 보다 가까운 시대를 그려내 신드롬을 일으켰다. 팬덤 문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극의 초반부에는 1990년대 후반을 달궜던 아이돌 가수들과 그 팬들 사이의 알력관계를 현실적으로, 또 재치 넘치게 그려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응답하라 1997' 열풍은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로 사랑받고 있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성공 요인과도 맞닿아 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응답하라 1997'과 마찬가지로 톱스타 한 명 없이 출발, 지난 2007년 방영을 시작해 시즌 11까지 무려 5년 이상을 이끌어왔다.
방영 초기 '막돼먹은 영애씨'는 정통 연기자는 아니지만 개그 무대를 통해 연기력을 쌓아온 김현숙을 정면으로 기용해 신선함을 안겼다. 직장 여성이자 노처녀인 인물 영애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과 동료들이 꾸려가는 이야기는 그 어떤 트렌디 드라마들도 읽어내지 못했던 공감 포인트를 짚는 데 거침이 없었다.
◆과감한 묘사, 눈길 사로잡았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는 케이블계 또 다른 인기 시즌제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했다. '로맨스가 필요해 2012'는 지난 2011년 첫 선을 보였던 시즌1을 넘어서는 체감 인기를 몰며 20~30대 여성들의 공감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시즌1 방영 당시,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연애 에피소드들로 여성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던 '로맨스가 필요해'는 보다 달달하고 임팩트 있는 스토리로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주열매로 분한 배우 정유미는 독특한 캐릭터부터 남다른 패션 센스까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이끌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까칠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완소남' 윤석현 역의 이진욱과 지상 최대의 로맨틱가이 신지훈 역의 김지석은 여심을 제대로 흔들며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로맨스가 필요해 2012'가 선보인 감각적이고도 과감한 성(性)적 묘사였다. 15세 이상 관람가의 선을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공중파 드라마에서 만나기 어려울 법한 러브신이 드라마의 구석 구석을 채웠다.
특히 오랜 연인이었다가 친구 사이로, 다시 그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로 돌아선 주열매와 윤석현의 이야기는 성인 남녀들의 아찔한 로맨스를 대변하며 시선을 붙잡았다. 이별한 뒤에도 여전히 한 집에 살며 느끼는 두 사람의 묘한 감정선은 물론, 석현의 보조작가 나현(김예원 분)과 둘 사이의 삼각관계 역시 한결 섹시한 드라마를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
불감증이 연애 최대의 고민인 열매의 친구 우지희(강예솔 분)와 국민 불륜녀로 낙인찍힌 구두 디자이너 선재경(김지우 분)의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맨스가 필요해 2012'는 공중파 드라마가 속시원히 터놓지 못했던 연애 서사들을 한결 솔직하게 까발리는 데 성공했다.
◆'SNL 코리아', 발칙한 라이브쇼의 성공
본격 정치 풍자 코너들로 연일 이슈가 됐던 tvN 'SNL 코리아' 역시 케이블 채널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십분 활용한 프로그램이었다. 올해 시즌2를 론칭하면서는 보다 화끈해진 성적 묘사와 재치 넘치는 패러디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생방송 TV쇼라는 포맷에서 오는 현장감 역시 남다른 생생함을 전했다.
신동엽과 양동근, 박진영, 김정난, 조여정 등 각자 천차만별의 이미지로 소비돼 왔던 스타들은 'SNL 코리아' 무대에 호스트로 서며 일제히 상상 이상의 변신으로 시청자들을 놀래켰다. 특히 과거 SBS '헤이 헤이 헤이'를 통해 '콩트의 신'으로 불렸던 신동엽은 'SNL 코리아'를 통해 그 명성을 제대로 되새겼다. 신동엽은 이후 고정 크루로 쇼에 합류해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박재범과 '막돼먹은 영애씨'의 김현숙,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가 호스트로 나서 과감한 '19금' 퍼포먼스로 호응을 얻었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레이디가가의 '포커페이스'의 가사를 여성들의 성형 심리를 짚은 이야기로 개사해 B급 감성 짙은 코믹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앞서 'SNL 코리아'는 김현숙의 '엑스라지', 양동근의 '마이 미미인형' 등 패러디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고정 콩트를 소화하는 동시에 호스트의 활약을 돕는 크루들은 'SNL 코리아'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 공신이라 할 만하다. 김원해, 이상훈, 김민교, 정성호, 고경표, 김슬기 등 크루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미국에서 38년 간 방송해 온 오리지널 버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줄기차게 선보인 정치 풍자 콩트 '여의도 텔레토비'는 크루들의 활약이 가장 빛난 코너인 동시에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준 콩트 중 하나였다. 대선 후보들을 텔레토비에 빗댄 이 콩트는, 뉴스가 말해주지 않는 정치 이슈 이면의 서사를 재기 넘치게 재구성해 관심을 환기하기도 했다. 크루들은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이정희 등 전·현 대선 후보와 이명박 대통령으로 분해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