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지난해 10월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란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4차전 원정경기에서 0-1로 패했다.
당시 이란은 홈 텃세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훈련장 배정을 당일 오전 또는 늦은 오후에 하는가 하면 훈련 종료 후 돌아오는 길에는 경찰차 한 대가 에스코트를 해 교통정체에 갇혀 애를 먹었다. 보통 경찰 오토바이 두 대, 경찰차 한 대로 원정팀 버스를 에스코트 하며 교통정체를 뚫는 편의를 제공하는 한국과는 너무나 달랐다.
경기 전날 아자디 스타디움 훈련에서는 훈련 종료 시간을 갑자기 앞당겨 끝내는 등 한국 대표팀의 리듬을 끊는데 주력했다. 경기 당일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은 알면서도 돌아가 시간을 끄는 등 뻔히 보이는 꼼수를 부렸다.
동행했던 취재진도 이란의 텃세에 걸려들었다. 이란으로 출발하는 당일 오후 늦게야 비자를 내주더니 테헤란행 비행기 이륙 직전 예약했던 숙소의 변경 통보가 날아들었다. 경기 당일 관중들은 비닐봉투에 색소, 페인트를 넣어 그라운드의 한국 사진기자들에게 던졌다. 트랙이 있어 거리가 멀어 맞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조약돌을 던지는 관중도 있었다.
이란이 1-0으로 승리한 후에는 이겼다는 즐거움에 한국 취재진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뜨거운 작별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안전 관리를 책임지는 이란 측은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 황당함 그 자체였다.
일부 이란 취재진도 막무가내였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국내 취재진이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인터뷰를 하는 도중 불쑥 마이크를 내밀더니 "오늘 졌는데 기분이 어떻냐"라며 예의없이 치고 들어와 상식 이하의 질문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패배에 열이 받아있던 기성용은 이란 취재진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물러서라고 했다.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가 끝난 뒤 이란 취재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갔다.
이란 원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강희 감독에게 "이란과 최종전에서 우리가 꼭 주도권을 잡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 감독은 "우리가 1위 하고 있으면 되는 거죠. 무조건 이겨야지요"라며 승리를 다짐했다.
현역 시절, 또 수원 삼성 코치와 전북 현대 감독 시절 중동을 수없이 다녔던 최 감독에게도 이란의 저열한 텃세는 고개를 가로젓게 했다. 최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등 여러 국가를 다녔지만 이란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며 기막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최종예선 이란과의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둔 현재, 1위 한국은 승점 14점으로 2위 이란(13점)에 앞서있다. 한국이 이란을 이기면 조1위 확정이다. 3위 우즈베키스탄(11점)은 홈에서 4위 카타르(7점)를 만나 무조건 이긴 뒤 한국이 이란을 잡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키는 한국이 쥔 셈이다. 한국은 이란과 무승부를 기록해도 본선행을 확정짓고, 패하더라도 골득실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크게 앞서 있어 본선에 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란의 저열한 행태를 겪었던 대표팀 입장에서는 이란이 반드시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마침,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이 최강희 감독에게 "우즈베키스탄 유니폼을 선물하겠다"라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입 축구'를 하며 한국을 자극했다.
이란은 과거 한국전을 그르쳐 월드컵 본선 탈락의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가장 최근인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는 홈, 원정 모두 한국에 비겨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됐다. 두 경기 모두 박지성(퀸즈 파크 레인저스)이 동점골을 넣었다. 다시 한 번 한국이 이란에 좌절감을 맛보게 해줄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지난해 10월 이란 원정을 경험한 선수들이 13명이나 있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산을 넘었기 때문인지 여유로움 속 정신 무장이 단단히 되어 있다. 손흥민(함부르크), 정성룡(수원 삼성) 등 이란 원정을 뛰었던 이들은 칼을 갈고 있다. 손흥민은 "네쿠남이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겠다"라며 혈전을 예고했다. 정신력을 앞세워 이란에 설욕을 하겠다는 의지가 대표팀을 감싸고 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