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대만의 엄친아'라는 간단한 별칭으로 부르기에, 펑위옌의 첫 인상은 소탈하고 해맑은 청년의 느낌이었다. 장난스런 웃음이 섞인 답변들 사이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영리함이 묻어나왔다. 영화 '이별계약'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그와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2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콘래드서울에서 대만 배우 펑위옌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펑위옌은 2013 중국영화제 페막작 '이별계약'으로 지난 19일 중국 여배우 바이바이허와 한국을 찾았다.
'이별계약'은 수줍은 고백, 첫 키스 그리고 행복했던 기념일 등 모든 것을 처음으로 함께 경험한 리싱(펑위옌 분)과 차오차오(바이바이허) 커플이 5년 간의 계약 기간을 두고 이별하게 되지만 이후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극 중 모든 것을 처음으로 함께 경험한 커플로 애절한 감성연기를 펼친 펑위옌과 바이바이허는 중화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스타다. 국내에서 '점프 아쉰'(2011)과 '청설'(2009)로 이름을 알린 펑위옌은 '점프 아쉰'으로 대만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날 영어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저는 에디입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를 건넨 펑위옌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며 취재진을 만났다. '이별계약'을 통해 세 번째 한국을 찾았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극 중 리싱의 모습과는 또 다른 개구진 얼굴을 보여줬다. 본인과 통역사는 물론 함께 한 기자들과 스태프들까지 한 번의 대답 안에 몇 번의 폭소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스스로 "심각한 사람"이라고 장난스레 표현한 그는 "영화 안에서는 아주 기뻤다가 슬퍼하는 역을 소화했다"며 "홍보는 좀 재밌게 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펑위옌은 "열심히 하는 남자는 아닐지 몰라도 영화 작업할 때 만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며 "공부 열심히 하고 숙제 잘 해 오는 태도로 작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별계약'은 작업헀던 멜로 영화들 중에서는 우는 장면 등 감정 연기에 힘을 많이 쏟아냈던 것 말고는 전체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 그는 "한국 영화계에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펑위옌은 "캐나다 유학 시절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를 처음 봤다"며 "데뷔하고 나서 처음 본 한국 영화는 전지현의 '엽기적인 그녀'였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도 좋아했고 '스토커'도 좋았다. 최민식 선생님을 존경한다. 이영애 씨는 정말 중화권을 통틀어 정말 많은 팬을 소유한 배우다. 정우성 씨도 좋다. MAMA 시상식 때 만났는데 정말 젠틀맨이더라"고 한국 배우들에 대해 줄줄이 읊어 시선을 모았다.
농구선수도, 화가도, 우주인도 되고 싶었다는 펑위옌은 배우라는 길을 택해 전혀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 브리티시콜롬비아 대학 출신의 수재인 그는 '대만의 엄친아'로 불리는 인기 스타다.
이날 그는 "4~5년 전 계약 문제로 1년 간 일을 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다"며 "힘든 시간 동안 나 자신과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인지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대화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힘든 시간을 거치고 출연한 영화가 '청설'과 '점프 아쉰'이었다. 그 두 영화로 인생에서 전에 몰랐던 것들에 대해 배우게 됐다"며 "나도 성장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교휸이나 느낌을 전달해 주고, 그들의 삶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알렸다.
한편 한국의 제작진과 중국의 배우들이 만나 완성된 '이별계약'은 지난 5월 중국 개봉 후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한중 합작영화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제작비 3000만 위안(한화 약 54억원)을 이틀 만에 회수하는 등 이례적인 흥행 성과를 냈다.
'선물' '작업의 정석'의 오기환 감독이 연출을 맡고 CJ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이별계약'은 '해운대' 김영호 촬영감독, '황해' 황순욱 조명감독, '건축학개론' 이지수 음악감독, '도둑들' 신민경 편집감독 등 대한민국 대표 제작진이 모여 만들어졌다. 러닝타임은 103분, 20일 12세관람가로 개봉한다.
이하 일문일답
-몇 번째 한국 방문인가?
"모두 일 때문이었는데, 이번에 세번째 방문이다. 2003~2004년 추자현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내한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출연한 영화로 한국에 오게 돼 영광이다.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 전에도 합작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한중 합작과 연이 깊은 것 같다. '합작 왕'으로 불러달라. (웃음) 아마 배우라는 직업이 즐거운 것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연기를 할 기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 출신으로서 중국, 한국 등을 다니며 연기할 수 있어 좋다."
-또 다른 국가와도 합작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나?
"예전에도 중국, 홍콩 합작 영화에 출연했었다. 그 전 작품도 홍콩 감독과 작업했었다. 한-중 작업과 차이가 있다면 언어적 면이다. 한국 스태프들, 감독님들과 작업하니 굉장히 섬세한 것까지 신경쓰신다고 느꼈다."
-한국 스태프들과 작업해보니 어땠나?
"엄격하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일하는 시간표, 촬영 진행 방식에 있어 한국인들이 엄격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더라. 영화 작업을 할 때도 최상의 상태에서 촬영에 임할 수 있도록 해 줬다. (보통의 한국 영화 작업 환경은 그렇지 않다는 취재진의 말에) 섬세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셨다면 아무래도 합작이니 중국에서도 자존심을, 한국에서도 서로 자존심을 걸고 한 작업이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일하다보니 보다 조심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 그런 경우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더라."
-한국식 멜로는 어떤 면이 달랐나?
"일단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은 세계 어디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셨다면 알겠지만 멜로물이라는 것이 사실 정해진 이야기 전개 방식의 틀은 있지 않나. 거기서 어떤 점을 변환하고 보완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전개 자체는 익숙하더라도 배우로서 작업에 임할 때는 울고 웃는 것, 연기 한 가지 한 가지에 예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연기 방식을 드러낼 수 있을까 싶었다.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의 삶을 더 잘 드러내고 싶었다."
-10여 년 전 한국의 멜로 영화 경향과 '이별계약'의 서사가 닮아 있는 편인데, 이를 알고 있나?
"저의 경우 10년 전 멜로 영화들이 어땠는지 (나이대 탓인지) 잘은 모르겠다. 10년, 15년 전 유행한 이야기의 흐름으로 생각나는 게 있다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다. 예전 사랑 이야기를 지금 한다고 해도 사랑, 연애에 있어서는 바뀌지 않는 존재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계약이라는 설정이 진부해보일 수 있지만 그건 모르는 거다. 어떤 커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이런 계약을 해 보자'고 말할 수 있다. 사랑, 연애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잠깐, 그렇다면 내 연기가 10년 전의 그것 같았다는 건가?(읏음) (그렇지 않았다는 말에) 감사하다. 감독님이 들으면 좋아하실 것 같다.
영화에서 5년 전 배경에서 프러포즈하는 장면은 꼭 그래야 하나 싶긴 했었다. 그렇지만 여성분들이 생각할 때 프러포즈하는 남자가 꼭 꿇어 앉긴 해야 하지 않나.(웃음) 게다가 영화에서 프러포즈를 세 번이나 했는데, 세 번 하면서 지겹다고 생각은 했다. 여러분도 그러실 수는 있을 것 같다."
-펑위옌은 어떤 프러포즈를 히고 싶은가?
"생각나는 프러포즈가 다 영화에서 봤던 것들이다. 케익을 먹을 때 반지를 넣거나. '이별계약' 속 장면들은 여러분이 너무 진부하게 보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공손한 자세로 프러포즈를 한다면 좋지 않겠나. 이벤트식 프러포즈도 여성들이 좋아한다고 안다. 사람들 많이 모인 곳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 거절하기 어렵고 재미도 있다. 이야기가 나와 말이지만 예전에 영화에서 체초 선수 역을 했으니, 좀 다르게 한다면 뒤로 공중제비를 하며 프러포즈를 하면 어떨까. 바보같아 보일지도 모르겠다.(웃음)"
-오기환 감독이 중국에서 다시 작업한다면 펑위옌, 바이바이허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이별계약2'인가? 알고 보니 여주인공의 운명이 다른 내용으로 어떨까. ('사랑과 영혼'의 OST 를 부르며) 귀신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도 좋을 것 같다. 오기환 감독님, 바이바이허와 액션 영화를 찍어보면 어떨까 싶다."
-정말 동안이다.
"31세다. 마스크를 붙이고 화장을 해서 여러분이 못 알아보시는 거다.(웃음)"
-유머 감각이 넘치는 것 같다.
"심각한 사람이다. 영화 안에서는 아주 기뻤다가 슬퍼하는 역을 소화했다. 홍보는 좀 재밌게 하자는 생각이다. 기자들이 힘들게 일하는데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야 덜 피곤하실 것 아닌가. 유머라도 드리고 싶다.(웃음)"
-현장에서 자기 관리에 충실한 배우라고 들었다.
"하하하. 감사하다. 여러분께서 말하는대로 착하고 열심히 하는 남자는 아닐지 몰라도 영화 작업할 때 만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숙제 잘 해 오는 태도로 작업을 한다. '이별계약'은 작업헀던 멜로 영화들 중에서는 우는 장면 등 감정 연기에 힘을 많이 쏟아냈던 것 말고는 전체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대만에서도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의 영화나 배우가 있나?
"일단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 본 한국 드라마인 '가을동화'다. 캐나다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 시절이었다. 데뷔하고 나서 그 뒤에 처음 본 한국 영화는 전지현의 '엽기적인 그녀'였다. 여러 장르 별로 다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도 좋아했고 '스토커'도 좋았다. 최민식 선생님을 존경한다. 이영애 씨는 정말 중화권을 통틀어 정말 많은 팬을 소유한 배우다. 정우성 씨도 좋다. MAMA 시상식 때 만났다. 정말 젠틀맨이더라."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한국 배우들 중 딱 하나를 꼽으려니 너무 많다.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하며 서로 알고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 분들과 다시 작업할 수 있다면 배우도 스태프도 좋으니 꼭 다시 작업하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제가 누구와 멜로 연기를 했을 때 어울릴지 궁금하다."
-'가을동화'의 송혜교가 어떨까?
"송혜교, 전지현 씨 많은 연락 바란다."
-캐나다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언제 캐나다에 갔고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공부를 못 해서였다. 농담이다.(웃음) 캐나다에서 유학 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 잠시 대만에 왔다. 상을 치르던 중 할머니를 알던 감독님이 오셨다. 그 분이 대만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의 감독이었다. 그래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됐다."
-연예계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배우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아기 때 광고에는 많이 출연했었다. 외할머니 장례식 때 오셨던 감독님이 사실은 제가 어릴 때 그 CF감독이었던 거다. 스무살 때 저를 보고 같이 작업을 하자고 하더라. 원래는 아르바이트 식으로 시작했는데 처음 연기를 끝내고 나서 '잘 한다'고 하니 3년 덜컥 회사와 계약했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젊었을 때 생각 잘 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웃음) 그렇게 시작해 11년이 지났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원래는 농구선수도 되고 싶었지만 꿈을 포기했다. 흑인 선수와 경기를 하는데 자꾸 덩크슛을 하더라. 난 안되겠다고 생각해 항복했다. 어릴 때 그림 공부도 했었다. 화가도 되고 싶었다. 우주인도 되고 싶다. 생각해보면 난 아주 똑똑한 결정을 내렸다. 배우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언제부터 배우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나?
"4~5년 전부터다. 계약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어 1년 간 일을 완전히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다. 힘든 시간 동안 자신과 대화를 했다. 내가 정말 연기를 하고 싶은 건지,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인지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 반복적으로 나 자신과 대화했다. 힘든 시간을 거치고 출연한 영화가 '청설'과 '점프 아쉰'이었다. 그 두 영화로 인생에서 전에 몰랐던 것들에 대해 배우게 됐다. 나도 성장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교휸이나 느낌을 전달해 주고, 그들의 삶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 작품으로 한국에 많은 팬이 생겼다.
"전혀 모르겠다. 공항에서 나올 때도 우릴 반겨주지 않았다. 나름대로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나왔는데 반겨주지 않더라.(웃음) 두 명의 팬이 나왔다. 이따 레드카펫 할 때는 두 명보다 조금만 더 많이 나와 주면 된다. 자꾸 이러시면 한국 감독님이 절 이제 불러주지 않을 거다.(웃음)"
-한국에서 '대만의 닉쿤, 박태환'이라고 불린다. 알고 있나?
"알고 있다. 다 유명한 분들이다. 그럼 이따 정말 멋진 옷을 입고 가야겠다. 가장 좋은 양복을 꺼내 입겠다. 눈썹도 올리고 갈 거다. 마스크도 하나 더 쓰겠다.(웃음)"
-대만에서 활동하는 스타들 중 롤모델이 있나?
"주윤발, 성룡이다. 외할머니가 그 두 분을 정말 좋아하셨다. 어릴 때 할머니가 두 분의 영화를 보실 때 따라가서 같이 봐 드렸다. 할머니께서 그 분들의 신문 기사를 보여주시며 '이 분들은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아니지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두 분을 좋아하셨던 할머니를 위해 대만 데뷔작인 드라마 '애정백피서'를 할머니께 바쳤다.
'애정백피서'는 젊은 친구들 다섯 명이 나오는 드라마다. 그들 중 안경 쓴 친구가 한 명 나오는데 그게 저다. 일본 드라마였는데 대만에서 리메이크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는 일본 원작에서 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했다. 제가 그 역을 연기한 이후에도 기무라 타쿠야처럼 그렇게 유명해지진 않았다."
-차후 오기환 감독의 영화에서 강인한 연기를 펼치는 건 어떤가?
"아주 환영이다. 데뷔를 멜로로 한 뒤부터 멜로 연기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작년에 '콜드 워'라는 영화를 찍었다. 아직도 제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콜드 워'를 안 보셨으면 좋겠다. 멜로 영화 속 이미지로 기억해달라.(웃음)"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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