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선발 출전하는 베스트 멤버 11명 가운데 골키퍼 1명을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 10명 중 9명을 한 번에 바꾼다면?
동네축구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프로 축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선수들을 다양하게 기용해 실험을 한다고 해도 2~3명 내지 3~4명 새로운 선수를 내보내는게 보통이다. 기존에 맞춰왔던 조직력을 크게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함이다. 맞춰져 있는 큰 틀 안에서 새로운 활력소나 가능성 있는 새 자원을 찾기 위해서다.
만약 K리그 경기에서 이번 경기와 다음 경기 선발 명단에서 9명이나 얼굴이 바뀐다면 팬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K리그 경기장을 찾는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최상의 경기력과 최고의 선수들을 보기 위해 팬들은 돈을 내고 티켓을 사 축구장을 찾는다.
그런데 동네축구에서 벌어질 만한 이런 황당한 일이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이뤄졌다. 24일 동아시안컵 2차전 한국-중국전. 지난 1차전 호주전에 나섰던 한국대표팀 선발 멤버 11명 중 골키퍼 정성룡을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 10명 중 9명이 대거 교체됐다. 윤일록만 두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섰을 뿐 나머지 9명은 새로운 선수들이었다.
호주전에서 보여줬던 한국대표팀의 세밀한 조직력과 패싱 플레이는 중국전에서는 당연히 없었다. 기본 틀을 잘 잡아놨는데 그 틀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전한 선수들의 조직력은 엉망 수준이었고, 팬들을 매료시킬 만한 장면은 없었다. 결과는 0-0 무승부였다. 호주전 역시 스코어는 0-0이었다. 그런데 두 경기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호주전은 찬사가 쏟아진 무승부였고, 중국전은 무기력한 무승부였다.
홍명보 감독은 왜 9명이나 선발 멤버를 바꾸는 무리수를 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실험을 위해서다.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 1년 후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위한 옥석 가리기의 과정이다. 중국전 승리보다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경기에 투입시켜 월드컵 본선에 데려갈 선수들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실험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보다 1년 후 월드컵 본선이 중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홍 감독이 간과한 것이 있다. 경기장을 찾은 축구팬들과 TV를 통해 지켜보며 한국을 응원한 국민들이다. 실험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해 팬들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다. 팬들은 국가대표를 통해 한국 축구의 위상과 자긍심을 느끼고 싶어 한다.
선발 멤버 9명을 한 번에 바꾸는 무모한 실험은 늦은 시각 화성경기장을 찾아온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공인된 대회에서 벌이는 A매치는 연습경기가 아니다. 동네축구가 아니다. 실험만을 위한 경기가 아니다. 공짜 경기도 아니다. 실험도 정도껏 했어야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보이는 경기다.
주장 하대성과 부주장 홍정호를 모두 빼고 중국전에 임했다는 것은 오직 실험만을 위한 무대라고 알리는 셈이다. 호주전 때 홍 감독이 직접 100점 만점이라고 평했던 포백들을 모두 뺀 것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의 승리로 인한 축구팬들의 즐거움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전 승리가 가져다줄 환희는 개의치 않은 것이다. 이런 경기를 하려면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NFC)에 초청팀을 불러 연습경기로 치렀어야 한다.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 출전해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해서는 안 될 경기였다.
9명의 선발 멤버를 갈아치운 중국전은 이번 동아시안컵 대회 수준을 떨어뜨렸다. 동아시안컵은 동아시아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국제대회다. 그런데 홍 감독은 이런 큰 대회를 연습용으로 활용했다. 동아시안컵이 동네축구로 전락해버렸다. 전임 대표팀 감독 그 누구도 동아시안컵에서 이런 무모한 엔트리를 짠 이는 없었다. 전임 감독들은 실험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모든 실험이 끝나서 그러지 않았을까.
중국전 후 홍 감독은 "첫 승과 첫 골은 내게 있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들은 첫 골과 첫 승이 중요하다. 1년 후 브라질 월드컵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중요하다. 축구팬들이 지난 2010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중국에 0-3으로 패했을 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던가. 그래서 안방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중국을 시원하게 꺾고 새로운 공한증이 시작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던가.
팬들은 중국에 이겨 한국 축구의 자긍심을 찾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런저런 실험이나 하며 연습경기를 치르는 대표팀을 보러 돈을 지불하며 화성경기장까지 온 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고의 선수들을 보기 위해, 한국축구 대표팀의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 아낌없이 티켓을 샀다.
여전히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차갑다. 지난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터져나왔던 과오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홍 감독이 취임하고, 호주전 한 경기 찬사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호주전과 중국전에 붉은 악마가 얼마나 경기장을 찾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1년 후 월드컵도 물론 중요하지만 홍명보호는 우선 한국 축구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9명을 한 번에 바꾸는 무모한 실험은 팬들의 시선을 더욱 차갑게 만들 뿐이다. 월드컵도 중요하지만 지금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팬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골, 지금의 승리, 지금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신뢰가 쌓여야만 월드컵 본선도 모든 국민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돼 홍명보호를 적극 지지할 수 있다.
조이뉴스24 화성=최용재기자 indig80@i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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