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한일전인데…잠실 라이벌전은 나중에 봐도 되죠."
28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 이날 오후 6시부터 야구장에서는 프로야구 잠실 라이벌 두산 베어스-LG트윈스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는 5시 15분부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2013' 3차전 중국-호주전이 시작됐다. 이어 8시부터는 최고의 라이벌 한국-일본전이 열렸다.
잠실야구장과 종합운동장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스포츠 팬들이 몰려들었다. LG 또는 두산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과 붉은 의상을 입은 축구팬들이었다. 잠실야구장에서 야구야 늘 열리지만 축구는 2000년 5월 한국과 유고의 평가전 이후 13년 만에 A매치가 잠실벌에 돌아온 것이다.
이날 비가 오락가락해 관람 여건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오랜만의 잠실 A매치에 기대감을 갖고 모여들었다. 두산 레플리카를 입은 야구팬 정윤호(53) 씨는 "잠실에서 한일전 황선홍의 가위차기 골이 생각나더라. 오늘 만큼은 축구다"라고 관심을 전했다.
스코틀랜드 셀틱 유니폼을 입고 지인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영국인 이반 크리스티(35) 씨는 "한일전은 셀틱-레인저스 못지않은 더비전이라고 들었다.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경기라 관전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중국-호주전이 끝난 뒤 운동장 앞 거리는 빨간 물결이 넘실거렸다. 팬들이 갈라지는 남문 앞에는 FC서울의 홍보 트럭이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잠실이 축구로도 충분히 활력이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줬다.
이 와중에 일본 서포터 '울트라 닛폰' 1천여명은 한국 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 등 우정을 나눴다. 서포터 20명을 가이드 한 윤명진(48) 씨는 "잠실에서 경기를 한다고 하니 추억에 젖는 팬들이 있었다. 경기장으로 오는 동안 1998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이야기하더라"라고 전했다.
올림픽주경기장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 등 축구전용구장이 개장하면서 축구와 멀어졌다. 육상 경기 외에는 주로 가수들의 대형 공연이 열리거나 단체의 모임 장소로 활용될 뿐이었다. 지난 2007년 챌린저스리그(4부리그격) 서울 유나이티드가 홈구장으로 개막전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내 보조구장 등을 옮겨 다니며 떠돌이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번 동아시안컵 경기 일부가 잠실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주경기장에서 축구가 다시 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축구계로부터 나왔다. 정몽규 축구협회장도 서울에 제2의 프로축구팀이 창단돼야 한다며 잠실을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경기장 관리 주체인 서울시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전광판을 최신식으로 교체하고 그라운드 잔디도 새로 보식하는 등 본 모습 회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그라운드는 물론 기자석, 인터뷰룸, 선수대기실 등 내부 시설까지 보수했다. 앞으로 10월께 일부 시설을 더 보수한다고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경기장 본부석 왼쪽에는 '잠실에서 K리그 보는 그날까지. 서울시민의 팀, 서울유나이티드'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렸다. K리그 팀이 잠실에 생기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긴 현수막이었다. 마침, 박원순 서울시장도 경기장을 찾아 양팀 선수단을 격려했다. 이날 공식 관중수는 4만7천258명이었다. 잠실벌의 축구 부활 가능성을 알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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