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지난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히트 상품 중 하나는 '양떼 불펜'이었다. 두산 베어스에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김성배를 중심으로 이명우, 최대성 그리고 시즌 후반 복귀한 정대현까지. 이들은 마운드에서 탄탄한 허리 노릇을 했고 마무리 김사율까지 이어지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2012년에도 롯데는 '불펜 야구 시즌2'를 기대하게 했다. 김승회와 홍성민이 자유계약선수(FA)로 이적한 홍성흔(두산)과 김주찬(KIA)의 보상선수로 각각 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타선은 약해졌지만 상대적으로 마운드 전력은 양과 질에서 더 보강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현역 선수시절 명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시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에 마운드에 거는 기대는 더 컸다.
지난해 양떼 불펜의 한 축에는 프로 14년차 베테랑인 좌완 강영식도 있었다. 하지만 롯데의 올 시즌 불펜은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마무리로 낙점한 정대현이 흔들리면서부터였다. 결국 중간계투였던 김성배가 시즌 초반 마무리로 보직 변경됐다. 이 응급처방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순위경쟁이 시작되면서부터 롯데 마운드는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최대성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지난 시즌 마무리에서 중간계투로 자리를 옮긴 김사율도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 김성배도 블론세이브가 잦아졌다.
마운드 침체에는 강영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명우와 함께 좌완 계투 요원으로 롯데 불펜을 떠받쳐야 하는 그는 올 시즌 마음먹은 대로 공을 뿌리지 못했다. 거기에 몸상태까지 좋지 못했다. 강영식은 지난 7월 26일 사직 SK전에서 허준혁, 김수완에 이어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1이닝 동안 3피안타 2실점(2자책점)했고 팀은 1-11로 크게 졌다. 이후 강영식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도 원인 중 하나였다.
2군으로 갔던 강영식은 지난 15일 다시 1군에 합류했다. 20일 만에 1군에 온 강영식은 달라져 있었다. 그는 1군 등록된 당일 사직 넥센전에서 0-1로 리드당하고 있던 4회초 선발 홍성민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강영식은 2이닝 동안 26구를 던지며 6타자를 상대해 2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이날 롯데는 타선 부진으로 넥센에게 1-6으로 졌지만 강영식의 회복을 확인하는 소득이 있었다. 강영식은 이날 등판으로 투수 최연소 600경기 출전이라는 기록 하나를 세웠다.
이어 다음날인 16일 넥센전에도 강영식은 중간계투로 투입됐다. 전날보다 상황은 급박했다. 4-3으로 살얼음판 리드를 하고 있던 7회초 2사 1, 2루 위기였고 7번 유한준 타석이었다. 롯데 마운드는 정대현이 지키고 있어 넥센은 좌타자인 장기영을 대타로 내세웠다. 롯데 벤치도 즉각 대응을 했다. 강영식이 나설 차례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넥센은 대타를 또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좌완 투수에게 강한 우타자 오윤이 타석에 섰다. 두 팀 모두 여기가 승부처라는 걸 알았다.
강영식은 오윤을 상대로 4구 승부 끝에 투수 앞 땅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무리하고 리드를 유지했다. 롯데는 이어진 7회말 공격에서 집중력을 보여 대거 5득점,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마음이 가벼워진 강영식은 8회초 김지수, 허도환, 송지만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고,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문우람을 삼진으로 솎아내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김성배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날 강영식은 1.2이닝 동안 5타자를 상대로 22구를 던져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전날 2이닝 퍼펙트에 이어 이틀 연속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는 완벽한 피칭을 이어간 것이다.
강영식은 "감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설명할 순 없지만 선수들마다 잘 될 때 느껴지는 감이 있다. 그 전에는 투구를 할 때 딱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2군에 내려갔을때 이를 알게 됐다"고 좋아진 투구 감각을 전했다.
강영식의 이런 변화에 도움을 준 이는 바로 선배 이용훈이다. 이용훈은 지난 시즌 전반기 8승을 올리며 롯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베테랑 투수다. 그러나 어깨 건초염 때문에 후반기에는 전력에서 제외됐다. 포스트시즌도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했고 재활에만 매달렸다. 올 시즌 기대가 컸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러닝 훈련 도중 또 덜컥 다치는 바람에 지금까지 2군에 머무르며 몸을 추스리고 있다.
강영식은 "이용훈 선배의 조언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며 "용훈 선배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자주 하거나 그러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내 투구를 본 뒤 한마디를 건넸다"고 했다. 이용훈은 강영식에게 "왜 이런 식으로 공을 던지냐?"고 했다. 그는 "잘 던졌을 때 폼과 감각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네 스스로를 믿어라.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데 뭘 하겠냐"고 따금한 충고를 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얘기가 강영식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도 프로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강영식은 "납득이 안갔었다"고 웃었다.
하지만 2군에서 이용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포기하거나 체념할 수 있었겠지만 용훈 선배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며 "자기 관리와 재활 그리고 훈련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고 선배의 얘기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프로경험이 많은 선배의 말에 번쩍 스위치가 켜졌다. 강영식은 "용훈 선배가 나의 멘토가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에겐 또 하나의 멘토가 생겼다. 강영식은 투수 최연소 600경기 출전을 이룬 것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의식을 갖는데 계기가 된 인물이 있다. 강영식과 같은 좌완으로 현역 최고령 투수인 류택현(LG)이다. 강영식은 "류 선배를 보고 내가 가야 할, 그리고 넘어서야 할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최소 40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것과 1천경기 출전이다.
강영식은 "그 전까지는 뚜렷한 목표 없이 마운드에 섰던 것 같다"며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롯데는 강영식의 부활이 반갑다. 치열한 순위경쟁 속 계속된 접전 상황으로 불펜진은 힘이 많이 소진됐다. 이런 시점에서 강영식의 가세는 가뭄 끝에 찾아온 단비와 같다. 물론 1군 복귀 후 두 경기에서 보여준 깔끔한 투구를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게 전제조건이다.
강영식은 "남은 시즌 맡은 역할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반드시 자신을 믿어라'고 조언을 해준 이용훈 선배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용훈 선배는 현재 처한 상황을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본다"며 "꼭 잘될 거라고 본다. 다시 1군 마운드에 함께 서 팀 승리를 위해 던지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이뉴스24 부산=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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