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잇따른 영화 심의 논란에 대한 영등위의 항변은 해명보다 변명에 가까웠다.
2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박선이 위원장은 영등위의 부산 이전 등 올해 주요 업무 추진사항을 보고한 데 이어 영화계를 달궜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 등급 분류 논란 등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영등위는 올해 일부 영화들의 등급 분류 결과와 관련해 명확하지 않은 기준 등의 문제로 거센 저항을 맞았다. '뫼비우스'를 비롯해 '명왕성' '연애의 온도' 등 수 편의 영화들이 제한상영가와 청소년관람불가,15세이상관람가 등급의 사이에서 분류 논란에 휩싸였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는 무려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국내 개봉의 길이 막힐 위기를 겪었다. 영화는 문제가 된 일부 장면을 편집해 세 번째 심의에서 청소년관람불가로 재분류돼 오는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한상영가 영화는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이 가능하지만 한국에는 전용 극장이 없어 사실상 상영 불가 통보와도 같다. 지난 6월 정부가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 가능한 등급 영화를 예술 영화 전용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알린 상태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며 '뫼비우스'의 사례는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영화제작가협회 등 충무로 영화인들을 분노케 했다. 이들은 공식 성명서를 통해 영등위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 박선이 위원장은 "'뫼비우스'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어 감사하다"고 입을 연 뒤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는 "'뫼비우스'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서 개봉을 할 것이고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 등급 분류에 대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의 원본은 저희만 보지 않았냐"고도 힘줘 말했다.
영등위에 따르면 제한상영가 등급은 "선정성과 폭력성, 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해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국민 정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광고 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다. 정의 자체가 관념적이고 상대적인 개념들로 이뤄져 있다.
물론 '혐오스러운 성적 행위(수간, 시간, 소아성애 등) 구체묘사, 실제 성행위나 성기 등의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묘사, 아동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자극적인 묘사, 근친상간이나 혼음 등 일반적 사회 윤리에 어긋나는 성 관련 내용 과도 묘사, 반인간적 반사회적 행위 등 인간의 가치와 존엄 훼손' 등 구체적 심의 기준은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기준들이 영등위가 제시한 제한상영가 등급의 추상적 정의와 얼마나 합치하는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인간의 보편적 존엄' '국민 정서'와 같은 개념들이 특정 기준들로 명확하게 그려질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로 분류된 상태라면 한국의 성인 관객들도 작품을 관람할 수 없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쉽게 말해 학교의 청소년들이 교사의 가르침에 따라 움직이듯 성인 관객들조차 영등위가 허가한 영화만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관객들은 '영등위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가치에 동조할 것을 강요받는 셈이다.
박 위원장의 거침 없는 항변 역시 등급의 정의 자체가 지닌 계도적 뉘앙스에 힘을 보탰다.
그는 "대표성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등급 분류 업무를 맡긴다"며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절차와 제도를 마련한 것"이라고 영등위의 역할을 설명했다. 이어 "영비법 규정에 따라 대가를 받고 상영되는 영상물에 대해 연령별 등급 분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등급들도 그에 따라 나눠졌다"고 항변했다. 또한 "영비법은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정한 것"이라며 합당성을 강조했다.
김기덕 감독이 '뫼비우스' 편집을 통해 재심의를 신청했던 것에 대해서도 "한국은 (등급 심사와 관련) 삭제와 편집 요구를 전혀 할 수 없게 된 나라"라며 "영등위는 등급을 심사하는 위원들이 누구인지도 공개한다. 산업 자율 기구로 운영되는 미국의 경우 등급 위원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비교했다.
"국회가 요청하면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까지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알린 박선이 위원장은 "'뫼비우스'에 대해서도 국회 어느 의원이 요청해 자료를 의원실에 준 적이 있다"며 "영등위가 이상하게 등급을 매긴다고 하는 대중의 불신은 불편하고 어렵다. 등급 분류 업무, 결과와 영화계 자세한 내용은 언제나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영화를 하는 분들이 왜 등급에 문제를 제기하는지 여러 생각을 한다"며 "진짜 자기 영화의 예술적 표현에 자부심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가"라고 덧붙여 시선을 모았다.
박 위원장은 "(전용 극장이 없는 제한상영가는 제외하더라도)15세관람가냐 청소년관람불가냐의 문제는 간단하다"며 "15세관람가 영화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만든 분들이 첫 번째로 마켓 사이즈를 구별하지 않냐"고 알렸다. 영화 감독 혹은 제작자들이 통상 흥행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려 15세이상관람가 분류를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등급 규정이 다 공개돼 있다. 책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첨언은 15세이상관람가를 원한다면 영화를 만들 때부터 등급 규정을 유의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연령과 가치관이 다르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영등위 위원들은) 영화 등급을 정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훈련과 경험이 많이 돼 있다"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많이 느끼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심의 위원의 연령과 가치관 등 심의 행위 자체와 무관한 외부 요인이 영화를 분류하는 시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그 스스로 인정한 모양새였다.
그는 "영화 등급을 분류할 때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들 하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면서도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숲을 보려 하지만 결정적인 나뭇가지를 안볼 수 없다"며 "답변이 잘못됐거나 고집스런 주장일 수 있지만 그를 감안하면서도 솔직 투명하게 답한 것"이라고 입장을 마무리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뫼비우스' 논란을 비롯해 등급 분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일찍이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영등위의 항변은 속 시원한 해명에도, 명쾌한 설득에도 미치지 못했다. 논리 대신 사견만이 돋보인 자리였다.
영등위로부터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를 받았던 '뫼비우스'가 편집을 거쳐 오는 9월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과연 "영화를 보면 등급을 이해할 것"이라는 박 위원장의 호언장담이 얼마나 많은 관객들에게 해당될 지 궁금해진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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