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2011년 당시 축구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던 조광래(59) 전 대표팀 감독은 기자와 사석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후배들 중 국가대표 감독이 되면 누가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다양한 얘기가 오간 가운데 조 감독은 황선홍(45) 감독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조 감독은 "(황)선홍이는 정말 잘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고생하고 지금은 포항 스틸러스에서 또 다른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을 하고있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2008년 말 부산의 지휘봉을 잡은 황 감독은 적은 돈을 써서 성적을 내려는 구단과 적지않은 갈등을 빚었었다. 어찌 보면 황 감독의 명성에 무임승차를 하려던 것과도 같았다. 초보 사령탑이었던 황 감독은 황 감독대로 자신의 지도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들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부산을 2009 피스컵(리그컵) 결승, 2010년 FA컵 결승에 진출시키는 등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했다.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결과는 모두 준우승. 실패라 할 수 있지만 조광래 감독은 "그런 실패들이 황 감독에게는 약이 될 것이다. 선수단 운용과 경기 운영 등 성공과 실패를 다 맛 본 황 감독이 나중에 국가대표 감독 지휘봉을 잡는다면 영리하게 이끌 것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황 감독이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명된 일이 최근 있었다. 지난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이 한창일 때 황 감독이 세평에 오른 것. 당장 내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2세 이하(U-22) 선수권대회부터 팀을 만들어야 하고 멀게는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대표팀까지 지휘해야 하는 것이 아시안게임대표팀 감독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황 감독은 얼마 전 포항과 2015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자신은 아시안게임대표팀에 관심이 없었음을 포항과 재계약으로 알린 것이다. 황 감독은 "(대표 감독직에 대한) 공식적인 제안이 전혀 없었는데 에이전트가 먼저 그런 소문이 있다고 물어오더라. 언론에서까지 언급이 되면서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구단과 올해로 계약이 만료되니 그런 소문이 돌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확실하게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포항이 더 혼란에 빠질 수 있었다는 것이 황 감독의 판단이었다. 그는 "내가 매듭을 짓지 않으면 팀이 흔들린다. 만약 일찍 아시안게임대표팀 이야기가 나왔다면 생각을 해봤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라며 자신은 포항을 끌고가는 생각에만 골몰했다고 강조했다.
물론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것은 모든 축구인들의 꿈이다. 이전에도 황 감독은 기자에게 국가대표팀 감독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올 1월 터키 전지훈련지에서 만났던 황 감독은 "대표팀이라는 곳은 참 매력적이다. 최고의 선수를 지휘할 수 있는 곳 아니냐"라며 가진 생각을 숨김없이 말했다.
물론 프로에서 좀 더 많은 공부를 한 뒤 도전해보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황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은 내 꿈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라며 "홍명보 감독도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홍 감독의 운영을 보면서 '내가 만약 대표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하나의 공부 아니겠느냐"라며 대표팀 운영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전했다.
대표팀 감독 도전 시기는 언제가 될까. 황 감독은 "두려움은 없지만 고민은 된다. 많은 경험을 했어도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대표팀은 내 축구 인생을 걸고 해야 한다. 어설픈 지도력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라며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한 뒤에야 도전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악과 깡으로 끝까지 살아남아야 진짜 국가대표다"
2011년 포항에 부임한 뒤 황 감독은 여러 명의 제자들을 국가대표팀에 보냈다. 황진성, 황지수, 고무열, 조찬호, 이명주 등이 태극마크의 맛을 봤다. 물론 부산 시절에도 박희도(전북 현대), 양동현(부산 아이파크), 정성훈(경남FC), 한상운(울산 현대) 등을 국가대표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중 끝까지 살아남아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는 없다. 이명주가 꾸준히 홍명보호에 뽑혀 내년 브라질월드컵에 대한 전망을 밝히고는 있지만 애석하게도 11월 A매치 2연전 엔트리에서는 탈락했다. 기성용(선덜랜드)이 복귀하고 한국영(쇼난 벨마레)이 10월 브라질, 말리전을 잘 소화하면서 대표팀내 이명주의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A매치 103경기에서 50골을 넣은 황선홍 감독의 국가대표에 대한 생각은 확실하다. 그는 "대표팀 승선은 실력이 좋아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살아남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대표팀 소집 후 경기를 준비하기까지에 대한 철저한 자세와 움직임 등을 감독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단순히 한 경기를 뛰려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부터 식사, 수면 등 모든 것에서 준비를 해야 한다. 감독이 지적하지 않아도 스스로 몰입해야 된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뛰어보자고 한다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황 감독의 지론이다.
이어 "부산 시절에도 박희도, 양동현, 정성훈, 한상운 등이 대표팀에 갔지만 한 경기만 하고 나오는 등 들락날락거리기만 했다. 포항의 고무열이나 조찬호도 마찬가지였다"라며 "(대표 차출돼) 한 경기만 치르고 나오는 것은 사실상 국가대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스스로 좀 더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며 생존력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 황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대표팀에 가는 선수들에게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오지 말고 거기 있어라'. '하나도 반갑지 않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식의 말이다. 그래서 성과 없이 오면 반갑지 않다"라며 대표팀에 정착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대표 발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황 감독은 "축구 외적으로는 겸손해야겠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악과 깡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너 왜 그렇게 못해'라고 하면 '예 제대로 하겠습니다'라며 욱하는 마음을 실력으로 표출해야 한다"라며 무엇보다 근성 있는 선수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③편에 계속…>
조이뉴스24 포항=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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