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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축구협회, 명분 집착해 A매치 성격 흐리지 말아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한 원정 평가전, 체계적인 계획 필요

[이성필기자]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호의 11월 A매치 2연전 중 지난 15일 스위스전을 국내에서 치렀다. 축구협회 창립 80주년 기념 경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대표팀은 스위스전을 치른 다음날인 16일 낮 곧바로 비행기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로 출국해 이틀 훈련 후 19일 밤 러시아와 평가전을 치렀다.

스위스전에서는 축협 창립 80주년과 관련한 콘텐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영표의 현역 은퇴식이 있었지만 80주년 기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위스를 상대로 2006년 독일월드컵 패배의 복수전이라는 테마 역시 80주년과는 관련이 없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영표 은퇴식은 기념 경기의 부가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며 나름의 기획물임을 강조했다.

스위스 대표팀은 경기 하루 전인 14일에야 한국에 도착해 경기를 치르고 돌아갔다. 시차에 적응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한국이 좋은 경기력으로 2-1로 승리하면서 스위스의 반짝 일정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일부 부상자가 빠지는 등 스위스의 전력이 온전치 않았던 아쉬움은 지우기 어려웠다.

두바이에서 만난 러시아 대표팀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러시아 대표팀은 해외파를 제외했고 일부 신예들을 내세워 한국을 상대하는 등 질적으로 떨어지는 경기를 했다. 그나마 홍명보 감독이 이 경기를 실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점들은 묻혔다.

당초 11월 A매치는 K리그 막판 일정을 감안해 국내에서 치르기로 되어 있었다. 지난 1월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 당시 눈앞에 닥친 본선 진출의 중요성으로 대표선수들을 일찍 소집하는 배려를 받았기 때문에 11월 A매치는 해외 원정을 치르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후 해외 원정 평가전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고, 11월 A매치 기간 해외에서 평가전을 갖기로 계획이 변경됐다. 원정 평가전의 당위성에 대한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K리그에서도 대표팀 상황의 중요성을 인식해 협조하기로 했다.

그런데 두 경기를 모두 유럽 등 해외에서 치르기로 얘기가 되다가 한 경기만 원정으로 치르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축구협회의 창립 80주년 기념이라는 명분이 내걸렸다. 축구협회의 창립일은 9월19일이라 시기 자체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명분 앞에 대표팀의 평가전 목적이나 선수들의 컨디션 등은 깡그리 무시됐다. 창립일 전후로 추석 연휴가 끼어 있어 행사를 치르기 어려웠다는 그럴싸한 변명이 있었다.

이로 인해 실무진은 11월 평가전 상대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고 스위스를 한국으로 부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초 계획대로 유럽 현지에서 경기를 치렀다면 하지 않아도 될 수고였다. 상대도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소속팀에서 여전히 주전 경쟁에 애를 먹고 있는 유럽파 대표선수들은 유럽→한국→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장거리 이동을 감내해야 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번에 네덜란드, 벨기에와 유럽 원정 평가전을 치러 1승1무의 호성적을 내면서 A매치 기간을 충실히 보냈다. 현지 매체들은 일본 축구에 놀랐다며 아시아 최강이라는 인식에 동의했다. 한국이 명분에 집착한 사이 일본은 경기력, 명분, 실리 등 모든 것을 잡아 비교가 됐다. 일본은 원정에서 유럽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한국도 유럽 원정 2연전을 치렀다면 좀 더 많은 소득과 과제를 찾았을지 모른다.

한국대표팀은 내년 1월 브라질과 미국을 거치는 3주의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한다.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의 A매치 데이 일정에 따라 3월5일에 한 차례 경기를 갖고 5월 두세 차례 정도 평가전으로 월드컵을 앞둔 최종 점검 기회를 갖는다. 만약 '실험'과 '옥석고르기'의 원정 평가전을 추진한다면 기회는 3월 A매치가 유일하다. 관례에 따라 5월 최종 엔트리의 윤곽을 잡은 뒤 국내 평가전으로 출정식을 갖고 브라질이나 중간 훈련지에서 최종 평가전을 치르는 일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K리그 개막 등으로 3월 원정 평가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조이뉴스24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내 평가전의 목적은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과정이다. 스위스전은 그런 의도가 있는 경기였다"라고 주장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축구협회가 명분에 집착해 대표팀의 평가전 목적 자체를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이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는 적고 점검해야 할 것은 많은 상황에서 완벽하지 않은 조건으로 평가전을 치르는 것이 누구에게 손해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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