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삼성화재에 새로 둥지를 튼 세터 황동일은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견줘 비교적 장신(195cm)이라는 장점이 있다. 송병일(우리카드)과 조재영(대한항공) 정도를 제외하면 세터 중에서도 키가 꽤 큰 편이다. 그리고 왼손잡이다.
좋은 자질을 갖춘 황동일이지만 그 동안 기량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세터의 기본이 되는 토스가 불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또한 2단 연결에서 토스보다는 자신이 직접 공격을 시도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동료 공격수를 살리거나 활용하는 플레이가 다른 세터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황동일은 올 시즌 대한항공에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주전 세터였던 한선수가 군 입대를 하는 바람에 찾아온 기회였다. 신인 시절이던 LIG 손해보험 이후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왔다.
그러나 황동일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김종민 감독을 비롯한 대한항공 코칭스태프는 황동일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었다. 지나친 기대감이 부담이 됐을까. 황동일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결국 백광언과 신인 조재영에게 밀렸다. 팀 내 세 번째 세터가 되며 원포인트 블로커로도 기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황동일은 지난 17일 류윤식과 함께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대한항공은 두 선수를 보내는 대신 삼성화재 세터 강민웅과 센터 전진용을 데려왔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황동일 영입 이후 "우리 팀에 와서도 자리를 못 잡는다면 보따리가 필요할 수 있겠다"며 껄껄 웃었다.
신 감독의 웃음에 담긴 의미는 여러 가지다. 황동일은 프로 입단 후 이번까지 이적만 세 차례 경험했다. 하지만 앞서 두 번은 황동일이 주가 된 트레이드였다. 자신을 원했던 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적의 초점은 강민웅과 류윤식에게 맞춰졌다.
황동일은 트레이드 과정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포함됐다. 황동일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신 감독의 말처럼 삼성화재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신 감독은 황동일의 '투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종의 자극을 준 셈이다. 황동일은 삼성화재에서는 자신아 주전으로 뛰어야 한다는 부담에선 벗어났다. 대한항공과 견줘 마음의 짐은 덜었다. 삼성화재는 유광우라는 확실한 주전 세터가 뛰고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상황을 봐가며 (황)동일이를 기용하겠다"며 "장점이 있는 선수다. 재미있을 것 같다. 한 번 지켜봐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황동일은 팀의 리드 여부에 상관 없이 점수 차가 어느 정도 날 경우 유광우를 대신해 코트에 들어간다. 삼성화재 합류 이후 지금까지 두 경기에 나왔는데 주로 유광우가 전위에 있을 때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대 투입된다. 황동일의 신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는 2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 경기에서 1세트 후반 투입돼 조커 노릇을 잘 해줬다. 삼성화재가 21-11로 우리카드를 크게 앞서고 있던 가운데 유광우와 교체돼 코트로 들어갔다.
황동일은 곧바로 패스 페인팅으로 득점을 올렸다. 박철우가 디그한 공을 공격수에게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처리했다. 이어 23-11에선 우리카드 안준찬이 시도한 퀵오픈을 블로킹으로 잡아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연달아 발휘했다. 황동일은 벤치에 있던 신 감독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신 감독은 1세트가 끝난 뒤 벤치로 들어오는 황동일의 머리를 다독였다. 신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당시 상황에 대해 "진정하라는 뜻"이라며 "두 점을 연달아 내서 그런지 신이 나 있더라. 오버하지 말라는 주의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 감독 역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황동일이 벤치의 의도대로 플레이를 잘 해줬다는 의미다. 삼성화재는 오는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대한항공과 원정경기를 치른다. 선수 맞교환 이후 두 팀이 처음 만나는 자리다. 황동일이 이전 소속팀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되는 경기이기도 하다.
조이뉴스24 대전=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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