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전설'이 돼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김연아는 21일(한국시간) 끝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무대를 끝으로 빙판을 떠난다. 충분히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홈텃세에 밀려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을 따낸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김연아는 피겨 입문 후 부상과 지겹도록 싸워왔다. 거의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이 부상과 재활을 반복한다지만 김연아는 한국 피겨에서 유일한 세계 수준의 선수였다는 점에서 부상 외에도 엄청난 부담이라는 짐을 안고 늘 도전을 계속해왔다.
김연아는 시니어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 2006년 척추와 엉덩이를 이어주는 천장관절 부상을 당한 뒤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차근차근 성적을 냈다. 2006~2007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프로그램을 3위로 시작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저력을 발휘하며 종합 1위의 성과를 냈다.
부상은 계속 김연아를 찾아왔다. 2008년에는 왼쪽 고관절 부상으로 캐나다 전지훈련 도중 국내로 돌아와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어찌나 통증이 심했는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을 정도였다는 것이 소속사 올댓스포츠 관계자의 설명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스케이트 부츠가 문제였다. 꽉 끼는 부츠로 인해 발목 통증이 생겼고 피멍이 들었다. 훈련 시간을 줄여야 하는 손해를 감수하며 부츠를 교체했다. 올림픽을 한 달 남긴 시점에서 내린 과감한 결정이었다. 보통 새 부츠 적응에 2~3개월은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결단이었다. 그럼에도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여왕' 대관식을 멋지게 치렀다.
부상은 은퇴 고민과 공백기를 낳았다. 밴쿠버 이후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오는 과정이 그랬다. 올림픽 후 2011 모스크바 피겨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까지 그 어떤 메이저 대회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2위에 오르며 기본 실력을 과시했고, 공백기를 거친 뒤 2년 후 참가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정상을 탈환해 '역시 김연아'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지난해에는 그랑프리 시리즈에 나서려고 했다가 오른발 중족골(발등과 발바닥을 이루는 뼈) 부상으로 소치 올림픽 대비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이 역시 오랜 부상이 누적돼 나타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현역 마무리를 위해 스스로 훈련 강도를 높이다 생긴 부상이었다는 점에서 더 안타까움을 샀다.
여기에 주 훈련장소였던 태릉선수촌 빙상장의 빙질도 김연아를 힘들게 했다. 딱딱한 빙질은 그렇지 않아도 몸이 성한 곳이 없는 김연아에게 고통을 더했다. 김연아의 주치의인 나영무 강서 솔병원 대표원장은 늘 휴식을 강조해왔다. 그는 "김연아는 오랫동안 점프를 하고 연습을 하니 통증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휴식을 강조했다"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김연아의 선택은 진통제 투혼과 심리적 무장이었다. 병원 치료 외에도 침술과 교정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연아는 지난 2010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부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시련을 견뎌낼 줄 알아야 진정한 성취를 맛볼 수 있다"라며 부상도 정상으로 가는데 있어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쿨한 태도를 보였다.
김연아는 현역 생활 중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로 맛있는 간식 섭취를 꼽았다.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식단을 조절하며 힘겨운 부상과 재활을 끊임없이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소치 올림픽을 끝낸 김연아는 이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부상과도, 무거운 마음의 짐과도 이별이다. 그야말로 감동과 함께 해온 영원한 피겨여왕의 '아름다운 안녕'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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