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소치동계올림픽은 빅토르 안(29, 한국명 안현수)을 위한 대회였다. 적어도 남자 쇼트트랙에 있어서는 그랬다.
러시아 대표로 출전한 빅토르 안은 이번 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동메달도 하나 보탰다. 1천500m 동메달을 시작으로 1천m, 500m, 5천m 계주에서 모조리 금메달을 따냈다.
그동안 러시아는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빅토르 안을 앞세워 한꺼번에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1천m 그리고레프), 동메달 1개를 수집했다.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종목 메달순위 1위는 러시아였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 쇼트트랙의 올림픽 첫 메달, 첫 금메달을 모두 책임졌다. 러시아 쇼트트랙 역사에 새 지평을 연 것이다. 그런 빅토르 안은 벌써부터 대표팀 코치 제의를 받는 등 러시아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빅토르 안 개인적으로도 이번 올림픽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8년만에 복귀한 올림픽 무대에서 3관왕을 재현해내며 자신의 건재를 알렸다. 빅토르 안은 '안현수'라는 이름과 한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도 3관왕에 오른 바 있다.
빅토르 안이 올림픽에서 이뤄낸 업적은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조금도 과하지 않다. 여러가지 최초, 최다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먼저 '최초'다. 두 차례 3관왕에 오른 것은 올림픽 쇼트트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500m, 1천m, 1천500m, 5천m 등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것도 빅토르 안이 최초다.
'최다' 기록 역시 빅토르 안의 차지가 됐다. 최다 금메달(6개) 신기록을 수립했고, 총 8개의 메달(금6 동2)로 미국의 안톤 오노(금2 은2 동4)와 함께 최다 메달 타이를 이뤘다. 하지만 금메달 수에서는 오노보다 한참 우위에 있다.
다 나열하기 어려운 빅토르 안의 업적은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부진과 씁쓸한 대조를 이뤘다. 남자 쇼트트랙은 이번 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목에 걸지 못했다. 지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빅토르 안은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알려진대로 귀화를 통해 러시아 국적을 획득했다. 이제 그를 '안현수'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따져 잘못됐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안'이다.
빅토르 안이 귀화를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가 존재한다.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파벌, 특정 선수 밀어주기, 짬짜미 등 국내 쇼트트랙계의 병폐가 그의 귀화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빅토르 안의 귀화를 막지 못한 빙상연맹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들은 수면 위로 떠올라 논란이 된 후 현재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빅토르 안 역시 2002년 솔트레이크올림픽에 선발전 없이 국가대표로 참가하는 특혜를 입기도 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는 4년 후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올림픽을 바라보며 재기를 도모해야 할 때다. 이제 더 이상 한국 쇼트트랙은 선수 한 명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독보적인 위치가 아니다.
빅토르 안의 귀화 이유 중 또 하나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의 부상이었다. 빅토르 안은 부상을 딛고 8년만에 화려하게 재기했다. 러시아가 알아본 그의 재기 가능성을 한국은 알아보지 못했던 것. 결국 빅토르 안의 귀화는 한국 쇼트트랙의 선수 관리 실패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선수 관리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밖에도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과감히 고쳐야 한다. 빅토르 안의 눈부신 활약에 한국 쇼트트랙은 울었다. 그 눈물을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때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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