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삼성화재 센터 고희진은 팀 내에서 두 가지 높은 위치에 있다. 주장이자 최고참 선수다. 1978년생인 리베로 여오현이 오프시즌 동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현대캐피탈로 이적하는 바람에 고희진은 이제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1980년생)가 됐다.
고희진은 "계속 뛰다보니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고희진은 그동안 삼성화재에서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자처했다. 여오현과 함께 늘 코트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여오현이 팀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하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조금 바뀐 모습이다. 코트 안팎에서 후배들에게 파이팅만을 외치진 않는다. 후배들의 얘기에 먼저 귀를 기울인다.
삼성화재는 28일 현재 20승 6패(승점 59)를 기록하며 순위표 맨 윗자리에 올라있다.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정규시즌 1위 확정을 향해 순항 중이다. 그러나 위기는 있었다. 지난 4라운드에서 삼성화재는 러시앤캐시와 LIG 손해보험에게 연달아 발목을 잡혔다. 한국전력을 상대로 3연패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후 다시 연승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고희진은 "2연패를 당했을 때 팀 분위기는 당연히 가라 앉았었다"면서 "선수들에게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했다. 신치용 감독도 그 부분을 가장 강조하셨다'고 얘기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후배인 고준용이 매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고준용은 왼쪽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진 류윤식 대신 선발 레프트로 나섰다. 그러나 서브 리시브와 수비에서 흔들렸고 팀도 경기에서 졌다. 고희진은 "(고)준용이는 심성이 워낙 착하다"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팀이 패하자 더 많이 자책하더라"고 했다. 주장이자 최고참으로서 후배가 힘들어하는 걸 못본 체 할 순 없었다.
고희진은 "준용이에게는 자신감 회복이 필요했다"고 했다. 러시앤캐시와 LIG 손해보험전이 끝난 뒤 고희진은 고준용을 포함해 후배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고희진은 말을 아끼는 대신 후배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기울여 들었다.
고희진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렸다. 고준용, 이강주 등 후배들은 정규시즌 1위와 우승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고 있었다. 고희진도 이전에는 그랬다.
삼성화재는 2006-07시즌이 끝난 뒤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실업시절을 포함해 V리그 원년(2005 겨울시즌)까지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세진(현 러시앤캐시 감독) 김상우(현 성균관대 감독) 신진식(현 삼성화재 코치) 등이 모두 팀을 떠났다. 고희진은 "그 때 팀에 남아 있던 선수들 모두 걱정을 많이 했다"며 "우리 대에 와서 우승 전통이 끊기게 할 순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서로 의기투합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돌아봤다.
삼성화재는 2007-08시즌 다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지난 시즌까지 챔피언결정전 연속 우승에 성공하며 리그 최강팀으로 입지를 굳혔다. 고희진은 "준용이를 포함해 후배들이 그런 스트레스를 떨쳐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즌까지 함께 했던 여오현과 석진욱(현 러시앤캐시 수석코치)이 빠진 자리를 반드시 메워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내야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고희진은 "전망은 밝다"며 "레오(쿠바)부터가 오히려 우승에 대한 의지를 더 내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은 5라운드 경기에서도 고비는 분명히 올 것"이라며 "그러나 이를 즐겁게 받아들이겠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연패를 당했던 부분이 서로 의지를 다지는 데 더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삼성화재가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끈끈한 조직력이다. 그 구심점에 바로 고희진이 자리잡고 있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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