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K리그 클래식에는 수많은 무기가 있다. 그라운드를 수놓는 각 팀의 정상급 선수들도 있고, 전북의 '닥공'처럼 팀을 대표하는 전술도 강력한 무기다.
팬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도 있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무기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강력한 힘을 내는, '무형'의 무기가 있다. 바로 '윤성효 부적'이다.
윤성효 부적은 지난 시즌 탄생했다. 윤 감독이 이끄는 부산이 극적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고, 또 90%까지 다가왔던 울산의 우승에 발목을 잡는 등 부산이 드라마틱한 승리를 잇따라 거두자 윤성효 부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팀을 만나도 승리하고, 극적인 승리를 연출해내는 부산의 윤성효 감독에게 상징적으로 부적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선물한 것이다. K리그 팬들, 부산 팬들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재미 있으라고 만든 것이다. 또 부적으로 인해 K리그, 부산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 위해 만든 것이다. 물론 윤 감독은 부적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또 미신을 믿는 감독도 아니다. 그런데 이 윤성효 부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힘을 내더니,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됐다. 지금껏 이토록 강력했던 무형의 무기는 없었다.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23일 부산을 만나기 전 윤성효 부적을 경계했다. 최 감독은 "무형의 압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실체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상대 선수들과 감독들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적의 존재감이 부산을 만나는 상대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것이다.
상대 선수뿐만 아니라 부산 선수들에게도 부적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날 FC서울전에서 페널티킥 2개를 막아내며 부산의 1-0 승리에 주역이 된 부산의 골키퍼 이범영은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이범영은 "전반 시작 전 몸을 풀 때 부산 서포터즈가 걸어 놓은 윤성효 부적을 봤다. 그것을 보는 순간 왠지 믿음이 갔다. 오늘 전까지 솔직히 윤성효 부적을 믿고 있지 않았는데 페널티킥을 할 때 뒤에 윤성효 부적이 있으니 믿음이 갔다. 2개를 막고 보니 효력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이범영의 농담이다.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부산 선수들에게도 윤성효 부적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다. 부산 팬들에게도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성효 부적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실체는 없지만 분명 윤성효 부적이 탄생한 이유는 있다. 윤성효 부적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윤 감독의 고통과 고난, 설움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윤 감독의 달라진 마음가짐이 만들어낸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2012시즌까지 수원 블루윙즈를 지휘했던 윤성효 감독. 당시 윤 감독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압박과 시련만 있었을 뿐이다. 조급했고 불안했기에 멀리 내다볼 수 없었던 것이다.
윤 감독은 "수원에 있을 때는 성적에 너무 얽매였다. 여유가 없었다. 우승을 못하면 비난 받아야 했다. 게임에서 이겨도 내용이 좋지 않으면 비난을 받았고, 내용이 좋아도 경기에 지면 비난을 받았다. 여유가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며 어려웠던 수원 시절을 회상했다.
수원과 이별하며 2013시즌 부산 지휘봉을 잡은 윤 감독. 여유가 생겼다. 비난의 횟수도 줄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봐주기 시작했다. 윤 감독은 힘이 났고, 윤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윤 감독은 "부산은 달랐다. 솔직히 우승 부담을 크게 주지 않는다. 스쿼드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승할 전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어린 선수들을 믿으면서 잘 키워야 하고 성적을 조금씩 내가야 한다. 부산은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구단이다. 마음이 편했다. 또 부산은 나의 고향이라 더욱 편한 곳"이라며 부산에서 달라진 윤성효를 찾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달라진 마음가짐과 수원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가 윤 감독을 변화 시킨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선수들은 믿고 끝까지 기다려 주는 방식이 익숙해졌다. 조급함보다 기다릴 수 있는 느긋함을 장착했다. 수원 시절 사라졌던 웃음도 되찾았다. 이런 변화가 윤성효 부적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윤성효 부적은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23일 서울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한 것. 2002년 9월 이후 17경기 연속 무승(3무14패) 행진을 드디어 끊은 것이다. 무려 12년 동안 걸렸던 저주가 윤성효 부적으로 인해 풀렸다.
경기 후 윤성효 감독은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부적 효과를 톡톡히 봤다."
조이뉴스24 상암=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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