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이미 지난 일이다. 핑계일 뿐이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지난 2006-07시즌 이후 7시즌 만에 다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도전했다. 2013-14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현대캐피탈은 라이벌 삼성화재와 만난 1차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5전 3선승제로 치러지는 챔프전에서 1차전 승리팀이 우승할 확률은 높았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은 2, 3, 4차전을 내리 졌고 결국 삼성화재의 우승 세리머니를 또 다시 지켜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우승이 확정된 4차전이 현대캐피탈의 안방인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렸기 때문에 더 속이 쓰렸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지도 이제 시간이 꽤 지났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마음은 남아 있다. 김호철 감독은 "2차전 2세트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차전 당시 현대캐피탈은 1세트를 먼저 따내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그러나 2세트 듀스 끝에 삼성화재가 이기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것이 분수령이 돼 이후 흐름이 조금씩 바뀌었다.
우승 후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도 김 감독과 같은 얘기를 했다. 신 감독은 "2차전 2세트를 내줬다면 치고 나갈 힘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승장과 패장으로 갈렸지만 두 사령탑이 꼽은 챔프전 승부처는 같았던 셈이다.
김 감독은 "내 책임이 가장 크다"고 돌아봤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삼성화재 선수들과 견줘 오히려 더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 1승을 먼저 따냈지만 되려 여유가 없었다. 우위를 점하고도 그 점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인 중 하나가 됐다.
김 감독은 "돌이켜보면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을 내가 잘 추스리고 덜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은 어느 팀보다 더 많은 투자를 했다. 우승이란 목표를 위해서였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리베로 여오현을 영입해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수비와 서브 리시브 라인을 보강했다. 그리고 초현대식 전용체육관과 숙소도 마련했다. 여기에 외국인선수로 대형 공격수 아가메즈(콜롬비아)까지 데려왔다.
김 감독은 "당연히 주변에선 우승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면서 "그런 점들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잘 다독이며 갔어야 했는데 나 또한 냉정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셈이다.
우승후보 일순위라고 꼽혔지만 사실 현대캐피탈의 시즌 출발은 썩 좋지 못했다. 문성민이 무릎 인대를 크게 다쳐 시즌 초반 뛰지 못했다.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자 최태웅과 권영민 등 국가대표급 세터 두 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감독은 "(최)태웅이는 사실 제대로 뛸 상황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발목 상태가 좋지 못해 수술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김 감독은 "그럴 경우 시즌 전체를 건너 뛰어야 했다"고 했다. 최태웅은 김 감독에게 '우승을 위한 적기다. 시즌을 선수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김 감독도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김 감독은 "삼성화재를 상대로 정공법을 선택했었다"고 했다. 바로 아가메즈를 중심으로 한 공격이다. 주 공격수 노릇을 하는 외국인선수에게 맞춰 경기를 운영했다. 그러나 결국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가 아니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역시나 프로는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김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는 현대캐피탈만의 색깔을 앞세운 배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수구성과 상황은 다르지만 2005-06, 2006-07시즌 2연속 우승을 달성할 때 현대캐피탈은 특정 선수에게 팀 전력이 몰리지 않는 '토털 배구'에 가까운 모습으로 정상의 실력을 뽐냈다.
김 감독은 "무엇보다 시즌 내내 성원을 보내줬던 팬들에게 가장 미안하고 선수들을 포함해 물심양면 지원을 했던 구단과 프런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패배라는 결과 속에서도 얻을 게 있다. 그는 "배운 점도 많은 한 시즌이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현재 가족들이 있는 이탈리아에 있다. 그는 배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딸을 응원할 겸 그리고 외국인선수에 대해서도 알아보기 위해서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역선수 시절 김 감독처럼 세터로 뛰고 있는 딸 김미나는 노바라 소속이다. 팀 주전 세터인 레나 묄러스(독일)의 뒤를 받치는 백업 역할을 맡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다시 1부리그로 올라왔는데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라갔다"고 딸이 뛰고 있는 팀의 근황을 전하며 웃었다. 또한 그는 "아가메즈와 재계약은 당연히 고려하고 있지만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김미나가 뛰고 있는 노바라는 피아젠차와 만난 준결승에서 각각 1-3과 0-3으로 지는 바람에 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했다. 김 감독은 5월 초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2014-15시즌 준비를 시작한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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