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1월 제52대 회장 선거에 당선됐다. 당시 축구계 야권을 대표했던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을 비롯해 김석한 전 중등연맹 회장, 윤상현 국회의원의 추격을 힘겹게 따돌렸다. 축구계의 개혁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협회장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축구협회의 새로운 수장이 되면서 소통과 화합의 축구를 약속했다. 경쟁했던 후보들과 만나 의견을 청취하는 등 나름대로 신선한 움직임을 보여주려 애썼다. 전임자들이었던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이나 조중연 전 회장의 경우 제왕적이고 독선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쇄신이 필요했다.
업무 파악을 위해 전 회장은 축구협회 임직원 모두를 면담하는 등 노력도 보여줬다. 각종 분과위원회와 16개 시도협회, 8개 연맹 등 산하 기관과의 소통을 위한 움직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취임 일성으로 들고 나왔던 축구 문화의 혁신과 인프라 확충, 국제적 위상 제고, 투명 행정 등도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행정의 업그레이드는 축구협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그래서 정 회장은 협회 관련 부서 간 유기적인 움직임을 위해 칸막이를 없애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낸 것은 거의 없다. 시간이 가면서 개혁보다는 안정지향적인 분위기가 더 짙어졌다. 외교력은 정 회장 원톱으로 움직이고 있고 프로축구연맹 총재로 활동하며 절실하게 느낀 TV중계권 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협회 내에서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한직으로 내몰리거나 대기발령 조치 되는 등 업무의 연속성이 저해되는 일이 일어났다. 단순히 외적인 개혁을 위해 사람을 내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또, 그 분야 전문 인력이 배제되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쏟아졌다. 10일 홍명보 감독의 사퇴 기자회견장 밖에 붙어 있던 인사 보복 관련 대자보는 협회의 인사 문제가 계속해서 정 회장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알게 해줬다.
단적인 예가 식물화된 기술위원회의 역할이다. 현재 협회 기술위원 중 안익수 위원은 브라질월드컵 결승전까지 관람하며 최신 세계축구 동향 파악을 위해 현지에 가 있다. 나머지 기술위원들은 각자의 할 일에 정신이 없으니 대표팀의 상황이나 문제점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
상시 조직이 아닌 기술위원회는 거수기로 전락한 모양새다. 지난해 기술위원회의 업그레이드 문제가 나왔을 때 정 회장은 "상근 기술위원직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나름대로 의지를 보였지만 시간 부족 등의 문제로 덮어버렸다. 행정의 난맥상이 누적됐고 그 결과가 대표팀의 월드컵 부진과 그 후폭풍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 회장은 홍 감독 사퇴 기자회견 후 직접 대국민 사과를 통해 "이번 월드컵 부진을 거울삼아 한국 축구는 더 큰 도약을 준비하겠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기술위원회를 대폭 개편하고 후임 대표팀 감독도 조속히 선임하겠다"라며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단기성 대책으로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식의 형식적인 개혁은 확실히 지워야 한다는 것이 축구계 중론이다. K리그 한 구단의 감독은 사견을 전제로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고 축구협회가 뒤로 빠져 있었던 이번 사례는 정말 최악이다. 지도자들은 자존심을 먹고 사는데 최소한의 명예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이래서는 그 어떤 지도자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행정도 프로연맹이나 구단이나 다른 곳과 진짜 소통을 해야 한다. 일방통행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뼈 있는 지적을 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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