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엄마 선수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배구팀들의 외국인선수 영입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바로 전 해 아기를 낳았을 경우 해당 선수에 대한 스카우트 평점은 낮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낸시 카를로(쿠바)였다. 1986년생인 카를로는 쿠바대표팀 출신 공격수로 국내 프로팀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영입 리스트에 올랐던 선수다.
실제로 한 구단은 카를로와 계약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하지만 카를로는 V리그에서 뛰지 않았다. 출산으로 바로 앞선 시즌을 통째로 쉬었기 때문이다. 그 구단은 카를로의 몸상태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았고 결국 계약하지 않았다.
카를로는 V리그 대신 유럽리그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럽에서 카를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카를로와 접촉했던 구단이 계획대로 영입을 했다면 카를로 덕을 보며 더 나은 성적을 낼 수도 있었다.
IBK 기업은행은 2014-15시즌 뛰게 될 새로운 외국인선수로 데스티니 후커(미국)를 선택했다. 데스티니는 2009-10시즌 V리그에서 GS 칼텍스 소속으로 이미 국내 코트를 밟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 데스티니도 결혼 후 지난해 출산을 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013-14시즌을 거의 통째로 쉬었다.
데스티니는 지난 3월 푸에르토리코리그 카구아스 크리올리스 소속으로 코트에 복귀했는데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얼마 뛰지 못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기량에 정점을 찍고 이제는 하향세가 뚜렷해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정철 IBK 기업은행 감독은 데스티니 영입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데스티니의 몸상태에 대해 확인을 했다"며 "전성기 기량의 80%정도만 보여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했다. 이 감독은 "80% 이상 기량을 끌어내는 건 코칭스태프의 몫"이라며 "팀 창단 후 두 명의 외국인선수와 함께 했다. 그런데 지난 시즌 뛰었던 카리나(푸에르토리코)의 경우 결정적인 순간 올라온 두 세 번의 찬스를 마무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IBK 기업은행은 2013-14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노렸다. 그러나 마지막 고비에서 베띠(도미니카공화국)가 버티고 있던 GS 칼텍스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 감독 입장에선 속쓰린 학습효과가 됐다.
이 감독은 "김희진, 박정아 등 공격력이 이미 검증된 국내 선수들이 뛰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선수에게만 공격과 득점이 몰리는 배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데스티니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해결사 노릇만 해준다고 해도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이 데스티니를 새로운 외국인선수로 점찍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데스티니는 월드그랑프리에 참가하는 미국대표팀 22인 예비 로스터에 이름이 빠져있다. 기량이 부족해서 제외된 건 아니다. 미국은 그랑프리보다는 오는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2014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커치 카일리 미국대표팀 감독도 데스티니의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데스트니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면 일부러 그런 고민을 할 이유는 없다. 이 감독은 이런 부분까지 살핀 뒤에 그의 영입을 최종 결정했다. 이 감독은 "미국대표팀의 상황을 역으로 본다면 데스티니의 몸상태가 그렇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4 안산·우리카드 컵대회에 참가한 IBK 기업은행은 8명으로 미니 선수단을 꾸렸다. 김희진, 박정아, 남지연 등 공격과 수비의 핵심 선수들이 대표팀 차출로 이번 대회에 뛸 수 없다. 또한 오프시즌 동안 자유계약선수(FA) 이적 등을 포함한 선수 이동이 많아 선수단 규모가 전과 견줘 줄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IBK 기업은행은 19일 GS 칼텍스와 치른 첫 경기에서 센터 김언혜와 레프트 노란이 각각 레프트와 리베로로 나섰다.
이 감독은 "비록 0-3 패배로 끝났지만 선수들이 코트에서 잘 뛰어줬다"며 "처음 뛰어보는 자리였지만 맡은 역할을 잘 수행했다. 정규시즌에서는 좀 더 달라진 경기를 보여줄 거라고 본다"고 기대했다. 그는 "팀에 합류한 세터 김사니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기존 선수들은 물론이고 합류 예정인 데스티니와도 잘 맞춰 갈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조이뉴스24 /안산=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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