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마음 깊숙히 '진짜 사랑'을 원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까칠한 정신과 의사 해수(공효진 분)는 어머니의 외도를 목격한 충격 이후 마음의 병을 얻었고 의도치 않게 성적 욕망을 거세당했다. 300일을 사귄 애인은 외도로 나가떨어졌고 연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어쩌다 한 집에 살게 된 인기 작가 재열(조인성 분)은 그런 해수의 속을 종종 뒤집어놨다. 몰랐던 애인의 외도를 모든 친구들 앞에서 까발렸고, 남자와 못 자는 속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시종일관 깐족댔다. 멋대로 입을 맞추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해수를 봤다. "그 순간 설렌 건 맞다"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변명했다.
해수도 앞뒤 꽉 막힌 조선시대 아낙은 아니다. 적당히 쿨하다. 성인 남녀의 자유분방한 사랑과 섹스, 머리론 이해하지만 심장이 요동치지 않았을 뿐이다. 대개 가벼운 만남이 이어지려면 둘의 감정은 비슷하게 가벼워야 한다. 그러나 감정의 무게는 쉽게 평형을 이루지 않는다. 저울의 추가 기울듯, 감정이 깊은 쪽이 먼저 주저앉는다.
나름대로 '밀당'을 시작한 해수지만 재열을 향한 감정이 종종 헷갈렸다. 모든 종류의 사랑에 해당하는 확진 증상 '일희일비'를 시작했다. 잠든 자신을 바라보는 휴대폰 동영상 속 재열의 모습에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여고생을 집에 들인 걸 보니 덜컥 짜증이 인다. 저 가벼워보이는 남자의 감정을 감히 믿을 순 없지만, 왠지 흘러가는대로 맡기고 싶다.
16부작 드라마 SBS '괜찮아 사랑이야'(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가 어느덧 반환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1~2화의 빠른 전개, 4화의 반전 엔딩으로 안방을 달구더니 지난 5화와 6화에선 지해수와 장재열의 본격적인 로맨스를 그리기 시작했다. "노희경표 로맨틱 코미디는 솔직하고 화끈하다"던 공효진의 말이 공감을 살 법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말하는 것은 늘 삶 자체다. 연애는 가장 흥미로운 장치일 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속 재열의 인생은 얼핏 완벽해보이나 그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은 결핍,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가 낳은 트라우마다. 상상 속 인물 한강우(도경수 분)는 그가 긴밀하게 소통하는 유일한 존재다. 5화 속 해수를 향한 재열의 고백은 이제 그가 제 상처를 싸매지 않아도 될 실재하는 대상을 찾았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비단 남녀 관계의 진전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작가 노희경은 종종 남녀의 현실적 연애를 장치 삼아 우리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연애 외부의 조건들을 파고들었다. 시선은 종종 로맨스를 넘어 한 개인의 삶으로 확장됐다. 노 작가의 드라마 속 인물들의 관계에는 설렘이나 질투, 욕정 같은 연애 감정뿐 아니라 인물의 가족사, 트라우마, 콤플렉스 같은 바깥 요인이 크게 작용하곤 했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속 오영(송혜교 분)과 오수(조인성 분)의 만남은 운명적 로맨스인 동시에 불신과 절망에 빠져있던 한 여자가 세상과 화해한 계기였다. KBS 2TV '굿바이 솔로' 속 유지안(김남길 분)과 정수희(윤소이 분)의 엇갈림은 연인에게도 채 털어놓지 못한 지안의 가정사, 그로부터 시작된 열등감에서 비롯됐다.
그런가 하면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송혜교 분)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지만 어머니(나영희 분)의 외도를 직감했던 어린 시절 기억에 시달린다. 한없이 순박하고 이타적인 어머니(나문희 분)를 둔 연인 정지오(현빈 분)에게 제 어머니를 향한 애증의 감정을 고백하며 울부짖는다. 곳곳에 등장하는 준영과 지오의 자기고백은 롤러코스터 같은 이들의 관계 변화와 긴밀히 닿아있다. 과거의 인생사가 현재의 연애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이처럼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삶은 곧 연애고, 연애는 곧 삶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도 다르지 않다. 어딘가는 아픈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사랑에 빠지고, 저도 모르게 치유를 경험한다. 서로의 상처를 메꾸고, 용기를 북돋고,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될 터다. '솔직한 연애담'은 표피다. 결코 괜찮지 않은 인생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 그것이 바로 '괜찮아 사랑이야'의 속살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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