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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목, 봉준호·조성희·이수진이 알아본 보석(인터뷰②)


'살인의 추억' '괴물' 이어 '해무'까지, 봉준호와 3편 작업

[권혜림기자] 매 작품 다른 이의 삶을 사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라지만, 가끔은 자연인과 직업인으로서의 면모가 놀랄 만큼 다른 경우를 본다. 섬뜩하거나 어리숙하거나 무지하거나, 배우 유승목은 출연작들을 통해 꾸준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물론 그 중 하나의 이미지가 배우의 실제 모습일 것이라고 추측한 적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유승목은 그의 작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리고 다른 어떤 배우에게서도 읽은 적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큰 돌멩이를 던져도 이내 잔잔해지는 호수. 스크린 밖 유승목의 말씨는 작은 호수의 잔물결 같았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한없이 겸손하게 내어놓는 대답 끝에는 어김없이 평온한 기운이 흘렀다. 내뱉는 말의 끝마다 선한 기운이 인터뷰룸을 가득 채웠다.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제작 해무)는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한 여섯 명의 선원이 해무 속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유승목을 비롯해 배우 김윤석·박유천·이희준·김상호·한예리 등이 출연했다. 유승목은 욕망에 솔직한 전진호의 선원 경구 역을 연기했다.

극 중 경구의 헤어스타일은 인물의 외양을 강렬하게 장식한다. 그을린 얼굴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영락없는 뱃사람이다. 유승목은 "작품에서 보니 경구는 어촌에서 뱃일을 하지만 나름대로 동네에서 껄렁껄렁한, 한가닥 재밌게 노는 그런 친구인 것 같더라"며 "그렇다면 패션에 더 신경을 쓰고 헤어에도 신경쓰지 않을까 싶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경구는 처음부터 나쁜 일을 꾸며 돈을 벌려 하는 이는 아니고, 순박한 선원일 뿐이에요. 여자를 좋아하고요.(웃음) 성적 욕망이 크지만 늘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인물이기도 하잖아요. 극 중에선 돈이 있어야 여자도 만나게 되니 그런 거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유승목이 말하는 '해무'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다. 그는 "어떤 효과를 더 주기 위해 장치를 두거나 포장하거나 양념을 치는 것이 전혀 없이, 그야말로 리얼하게 한 사건에 의해 인간이 어떻게 어디까지 갈수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영화를 설명했다.

이어 "한 시간 오십 분 동안, 세워놓은 도미노가 탁 시작되면서 다른 군더더기 없이 인간의 모습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주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며 "영화를 보며 우리의 삶과 사회를 생각할 수도 있으니 훌륭한 영화가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해무'는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등을 선보인 봉준호 감독이 처음으로 제작에 나선 영화다.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했으며 '살인의 추억'의 각본을 쓴 심성보 감독이 연출했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서도 또렷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인물. 유승목은 '해무'를 포함해 봉 감독과 무려 세 편을 함께 작업한 사이다. '살인의 추억'(2003)에서 호흡을 맞춘 뒤 '괴물'(2006)에도 캐스팅됐다. 특별한 인연이 아닌지 묻자 유승목은 "선원들 중 이전에 봉준호 감독과 작업해 본 사람은 나 하나 뿐"이라고 장난스레 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봉 감독에 대해 "저렇게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인품도 훌륭하고 배려심도 많은지 놀랍다. 1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시더라"고 말했다.

유승목과 유독 자주 작업한 '천재 감독'들은 더 있다. 지난 2012년 장편 상업 영화 데뷔작 '늑대소년'으로 단숨에 흥행 감독 반열에 올라선 조성희 감독과는 '늑대소년'과 '짐승의 끝'(2010) 두 편을 함께 했다. 지난 4월 개봉해 독립 영화계 흥행 역사를 새로 쓴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과도 '한공주'와 '적의 사과'(2007)에서 두 차례 작업했다. 잘 알려진 '늑대소년'과 '한공주' 외에 두 편의 작품 역시 두 감독의 재능을 영화계에 널리 알린 수작들이었다.

"영화 '행복'(감독 허진호, 2007) 작업 때 연출부였던 이수진 감독을 알게 됐어요. '적의 사과' 출연 제안이 왔을 때 고사했는데, 결국 출연하길 잘 한 것 같아요. 영화를 정말 잘 찍는 감독이에요. 뚝심도 있고요. '한공주'도 같이 했으니 각별한 사이죠. 조성희 감독은 '짐승의 끝' 출연 제의 때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저녁에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쯤 혼자 으슥한 기운을 느끼며 창가를 돌아봤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정말 예의바르고 착한 감독이에요."

이쯤 되면 유승목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도 일견 이해가 간다. 보석을 알아 본 감독들의 출중한 안목도 놀랍다. 유승목은 "내가 좋은 배우라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운이 좋았다"며 "인복이 많은 사람인듯 싶다.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며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그간 했던 작업들을 떠올리니 정말 좋은 감독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것 같아 스스로 뿌듯하다"고도 말했다.

한편 지난 13일 개봉한 '해무'는 지난 20일 113만6천208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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