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배우 강동원을 보는 내내 헛웃음이 났다. 뭘 입혀놔도 멋이 흐르는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날개를 단 듯 자유롭게 극단의 이미지를 오가는 그의 영민함이 새삼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과장하자면 '속은' 기분까지 들었다. 물론 더없이 유쾌하고 행복한 배신감이다.
불과 한 달 전 개봉한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감독 윤종빈·제작 월광)에서 분명 강동원은 잔인무도한 무관이었다. 내내 섬뜩한 눈빛을 쏴대며 눈부신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번 영화에선 반전의 연기를 펼쳤다. '두근두근 내 인생'(감독 이재용·제작 영화사 집)의 강동원은 태티서에 열광하고 아픈 아들이 선물받은 게임기까지 탐내는 해맑은 아빠다. '생활의 때'라고 할 만한 그늘진 구석이 전혀 없는 캐릭터. '군도'의 조윤이 어둠진 그늘 자체였음을 떠올리니 더욱 놀랍다.
새 영화 속 강동원은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됐다. 어찌 보면 그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한참 더 닮은 인물 대수로 돌아왔다. 철 없지만 한없이 선한 남편이고, 아빠고, 아들이다. 영화를 찍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는 강동원은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이뤄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런 저런 소회를 풀어놨다.
"현실에 있음직한 이야기에 크게 끌리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강동원이 '두근두근 내 인생'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번엔 상황이 극단적이지 않나"라며 "가장 젊은 부모와 가장 늙은 아들. 극단적 상황에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좋았다"고 알렸다.
그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가리켜 "처음으로 부모님이 보셨으면 좋겠는, 부모님께 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고 표현했다. "'군도'를 바치기엔 좀 그렇지 않냐"고 웃으며 덧붙이는 장난기에선 스크린 속 대수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강동원은 미라의 철부지 남편이자 아들 아름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 대수 역을, 송혜교는 아이돌을 꿈꾸던 과거를 지닌 미라 역을 연기했다. 아름 역은 아역 배우 조성목이 맡았고 이재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9월3일 개봉한다.
이하 강동원과 일문일답
-완성된 영화를 어떻게 봤나?
"재밌게 봤다. 며칠 전 기술 시사 때 봤는데 깔끔하더라. 제가 나온 장면이 그렇게 슬픈 줄은 몰랐다. 울 것도 아닌데 울었다.(웃음)"
-스스로 연기했으니 장면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도 눈물이 나던가?
"극장에서 제대로는 처음 보니 슬프긴 하더라. 언론 시사 때 박수를 쳐주시길래 영화를 잘 보셨구나 생각했다."
-한 달 전 '군도'에선 악역을 연기했다. 완전히 달라진 이미지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글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땅에 발을 딛은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간 너무 상상 속에 나올 인물들을 많이 연기했다. 최근 가장 평범했던 인물이 '의형제'(감독 장훈, 2010)의 남파공작원 역이었다. 오랜만에 평범한 역할을 했다. 어쨌든 최대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연기자 몫 아닌가. 너무 평범하게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별 의미를 못 느끼겠다. 시나리오 상에 재밌는 요소들이 있으면 최대한 극대화시키는 편이다. 이번에는 조금 편했다."
-영화를 보니 살을 찌운 것 같더라.
"10kg쯤 찌웠다. 원래 몸무게는 64kg였는데 '군도' 끝나자마자 74kg까지 찌웠다. 76kg이 목표였는데 주변에서 말리더라. 너무 엉망으로 나온다고.(웃음) 영화사 대표님(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과 PD님이 그랬다. 많이 티는 안 나는 것 같다. 74kg면 정상 체중이어서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72kg였는데 연기를 시작하며 68kg로 유지했다. 화면에 조금 아무래도 불어 나오니 살을 뺐었다. '군도' 등에서 날카로운 캐릭터를 연기할 땐 64kg에서 66kg를 유지한다. 이번엔 75~76kg이 목표였었다. '엠'(M, 감독 이명세, 2007) 이후 최고 체중을 찍었다. 지금은 68kg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왜 그만 찌우라고 했는지 알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얼굴이 잘 나와야 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영화사 대표님도 여자 분이시니 걱정되셨나보다.(웃음)"
-'잘생김'의 아이콘인데, 살도 찌우고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얼마 전 인터뷰를 하는데 '김이 꼈어요. 잘생김'이라는 농담을 한 분이 계셨다.(웃음)"
-평소 관리에 철저한 편인가?
"그렇다. 퍼진 것 같으면 운동도 한다. 어제도 운동을 너무 해서 몸이 쑤신다."
-사투리로 연기했다.
"대수의 말투를 처음에 먼저 만들었다. 연기를 해야 하니까. 콘셉트를 잡아서 조금 더 조절했다. 제 말투가 튀어나와도 상관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다만 조금 편했다. 처음엔 감독님이 갑자기 사투리를 쓰자고 하셔서 저는 반대했다.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이 저였다. 지방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오며 말투가 한 번 바뀌지 않나. 거슬릴까봐 반대했었는데, 좋아하시더라."
-평소 본인도 사투리를 쓰지 않나.
"그래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거슬릴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던 것 같다."
-영화 내내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다. 두 무드를 오가며 어떻게 감정을 조절했는지 궁금하다.
"이번 영화의 콘셉트는 '울려라'가 아니라 '울다 웃다'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좋았던 건 신파가 아니어서였다.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있는데, 굉장히 슬플 때와 과거의 밝은 부분을 오가는 것이 좋았다. 음악으로 조절하기도 했다."
-극 초반 아버지 역의 김갑수에게 뺨을 많이 맞더라.
"실제로 맞았다. 김갑수 선생님이 실제로 때리시더라.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많이 맞았다. 처음에 빨갛게 조금 칠해 놓고 중간부터 맞았다. 나중엔 너무 맞아서 후끈후끈하더라. 한 테이크에 4~5대 씩 맞으니까. 다른 앵로도 한 장면을 또 찍었는데 영화에선 안 쓴 것 같다. 아프긴 아팠지만 편하게 때리시라고 생각했다. 세게 때리시더라.(웃음)"
-원작인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읽었나?
"전혀 몰랐다. 들어본 적도 없었다. 소설을 거의 안 보고, 만화책 밖에 안 본다. 제안 받고 나서도, 지금도 안 읽어봤다. 이제 봐도 될텐데, 볼 이유가 없다. 저는 이 시나리오로 연기를 해야 할 사람이지 않나.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연기할 때 거슬릴 수도 있다. 심플한 게 좋다."
-영화가 너무 착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
"저는 좋더라. 전작에서 너무 못됐어가지고.(웃음) 이 영화를 찍으며 '힐링' 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조윤 캐릭터를 연기할 때 굉장히 날카로웠었다. 그간 연기했던 가장 착한 캐릭터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감독 배형준, 2004)의 희철이였다. 대수는 때리기라도 하는데 이 아이는 때리지도 않는다.(웃음)"
-이재용 감독은 특수분장 때문에 소설의 영화화를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아역 배우 조성목이 특수분장을 5시간이나 소화했다던데.
"5시간 했다고 말만 들었지 하는 걸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 아이는 5시부터 나와서 준비하고 그게 끝나기 30분 전 쯤 가서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아유, 고생한다'하며 분장을 받았다. 그래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본 적이 없다.(웃음)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는 막연히 (아이의) 외모를 상상하고 '잘 되겠지' 생각했다. 막상 한 것을 보니 큰 도전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역과 진짜 아이와 아빠처럼 지내진 않았나?
"처음에 '아빠'라고 하길래 하지 말라고 했다. '연기는 연기일 뿐 현실에서는 형이라고 하자'고 했다. 이상하더라.(웃음) 이렇게 큰 애가 와서 '아빠' 하니까 '뭐?' 싶었다. 아마 처음에 만났을 때였을텐데, 편한대로 부르되 '아빠'만 빼자고 했다.(웃음) 송혜교에게도 아이가 '엄마'라고 했는데 혜교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런데 제가 '형'하자고 했더니 혜교에게도 '누나'라고 하더라. 제가 관계 정리를 했다.(웃음)"
-조성목은 실제로도 어른스러워보이더라
"그것도 캐스팅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제가 오디션을 본 건 아니지만 감독님이 '어른스럽다'고 하더라. 분장 5시간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못 버티면 큰일 아닌가. 실제로도 저보다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 저는 오히려 철딱서니가 없었다. 영화 속 모습처럼 제가 원래 그렇다. 5시간 분장하는 아이가 너무 불쌍해보여 (하)정우 형이 '군도' 때 심심할 때 하라고 사준 게임기를 아이에게 줬다. 저는 게임을 끊어서 안 하는데, 아이는 게임기를 줘도 안하더라. 정우 형이 사준 것엔 야구 하는 게임만 있었고, 야구는 싫어할 것 같아 용산에 게임을 사러 갔었다. 너무 재밌어 보이는 게임이 두 개 있어 그걸 사다줬다. 게임이 비싸지 않나. 그래서 제 것은 안 사고 같이 하자고 줬는데 안 하더라. 영화 속 장면처럼 '그럼 나 좀 해 볼게'했다. 그런데 현장에 안 가져오더라. 집에 있다길래 '내일부터 가지고 오라'고 했다. 해보니 게임이 너무 재밌고, 그렇다고 뺏을 순 없어서 그 세트 그대로 다시 샀다.(웃음)"
-게임은 왜 끊었나?
"너무 열심히 한 번 하고 나니 재미가 없더라. 당시 상대가 없었다. 보물을 찾고 싸우는 게임이었다.(웃음) 실제로 대수 성격과 진짜 비슷하다."
-출연 계기 중 송혜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들었다
"처음에 '이 시나리오 너무 재밌겠다'고 송혜교에게 이야기했더니 '영화사에서 받아 보라'며 '재밌을 것 같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더라. 다들 내가 그런 시나리오를 안 좋아할 것 같았다고 했다. 현실에 있음직한 이야기에 크게 끌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극단적이지 않나. 가장 젊은 부모와 가장 늙은 아들. 극단적 상황에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좋았다."
-태티서의 특별 출연도 이슈였다.
"출연해주신다고 한 분들이 많지는 않았다. 최우선 순위에 있던 몇 분들 중 정말 고맙게도 태티서가 출연해주셨다."
-아이돌 가수와 강동원은 도통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평소엔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잘 안 본다. 집에 혼자 있으면 TV를 잘 안 켜고 컴퓨터만 한다. 태티서에 푹 빠진 연기는, 주위에 그런 친구들을 많이 봤으니까.(웃음) 나오면 저도 다 좋아라 하며 보긴 한다."
-극 중 대수가 철이 없지만 아빠 같다고 느낀 적은 언제였나?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건 무조건 합니다'라고 할 때, 아니면 아름이를 혼낼 때. 그런데 그 신이 가장 슬펐다고 하시는 분도 있더라. 개인적으로는 송혜교가 태티서를 보고 있을 때 가장 슬펐다. 그런데 어떤 분은 제가 연탄 나를 때 제일 슬펐다고 하더라. 그 장면에서 머리가 길었던 것은 제 아이디어였다. '무조건 맥가이버 머리 해야 한다'고 했다. 분장팀에서 반대했지만 '우리 때를 모르지 않냐'고, '무조건 해야 한다'고 했다. 중학생 때 맥가이버 머리를 했었다."
-'러브 포 세일' 이후 송혜교와 두 번째 만남이다. 호흡이 잘 맞았다고 했는데 어떤 식이었나?
"처음 뵙는 분과는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고, 벽이 있다. '이렇게 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면이 있는데 친분이 있으니 싫어하든 말든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러면 이 쪽에서도 잘 쳐 준다."
-영화는 철 없는 남녀가 부모가 되어 가는 이야기다.
"대수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상황이 주어지니 그에 맞게 연기를 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 부모님도 힘들게 키우셨겠지' 생각했다. 보시면서도 그랬겠지만 찍으면서도 그랬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달라졌나?
"그렇진 않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부모님께 바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군도'를 바치기엔 좀 그러니까. 물론 ('군도'도) 좋다고만 하셨다.(웃음)"
-한 달 새 두 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작품 수가 다른 또래 배우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안 한다고 생각한다. 광고가 별로 없고 작품 외 노출되는 것이 없어 그렇지 연기를 쉰 적이 거의 없다. 작품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면 현장에서 릴렉스가 안된다. 호흡이 돌아오기 오래 걸린다는 것을 '군도' 때 느꼈다. '전우치' 때도 제가 쉬고 싶어서 쉰 건 아니고 시나리오 작업이 길어져서였다. 그리고 군대 가면서 2년을 쉬었다. 열심히 찍고 싶다. 안 쉬고, 30대에 할 수 있는 작품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
-최근 에네스 카야와 김제동에 의해 아이스버킷 챌린지 다음 주자로 지목됐다.
"카야와 옛날에 친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 '왜 날 지목했을까. 왜 이랬을까' 했는데 (김)제동이 형도 지목하시더라. 입금은 바로 했다. 일단 (얼음물 샤워가) 강요는 아니더라.(웃음) '다들 하니까 묻어서 나도 할까' 했는데, SNS를 안하니 올릴 데도 없다. 영화사에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올리자고 했는데, 자칫 잘못하면 좋은 일을 홍보에 써먹는다는 생각을 하실 것도 같다. 저는 좋은 일이면 됐다는 생각을 하는 편인데 모르겠다. 고민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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