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손꼽히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다. 전쟁을 앞두고 죽을 각오로 싸우라는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병사들에게 자신감과 의지, 그리고 전투력을 북돋아주는 말이었다.
전남 드래곤즈 선수단이 올 시즌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 1월, 이순신 장군의 이 명언을 외친 바 있다. 이 명언을 외친 장소도 특별했다. 울돌목이었다. 울돌목이 어떤 곳인가. 전남 해남군과 진도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1597년 9월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침몰시킨, 이른바 명량대첩이 일어난 장소다. 영화 '명량'을 통해 더 유명해진 바로 그 곳이다.
전남이 이 곳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외친 이유. 바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이 왜군과 맞서 싸워 승리한 그 기를 받기 위해서였다. 투지와 정신력, 그리고 하나 된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최근 수 년간 하위권에서만 맴돌았던 전남이었다. 이번 시즌에야말로 반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
당시 하석주 전남 감독은 "이곳에 한 번 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경건해지고 한 번 죽도록 싸워보고 싶다는 의지가 든다. 2년 동안 많은 아픔이 있었다. 다 털어버리고 희망찬 2014년을 보낼 것이다. 전남 창단 20주년이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울돌목과 이순신 장군의 기운을 받은 전남, 출발은 좋았다. 전남은 시즌 초반 파란을 일으키며 상위권 경쟁을 펼쳤다. 스테보, 현영민 등 새롭게 영입한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해줬고, 안용우라는 특급 신인도 등장했다. 여기에 김병지, 이종호 등 기존의 선수들과 조화도 잘 맞았다.
올 시즌 K리그 최고 '다크호스'로 떠오른 전남이었다. 한때 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가며 K리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하석주 감독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하 감독은 "우승은 물론 하고 싶지만 올 시즌 전남의 1차적 목표는 상위 스플릿 진입이다. 전남에 위기가 올 수 있다. 그런 위기는 반드시 오게 돼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하 감독이 높은 순위에도 근심을 놓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인천 아시안게임이었다. 이종호, 안용우, 김영욱 등 전남의 핵심 멤버 3명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K리그 팀 중 최다 인원이 대표로 차출됐다. 전남의 전력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 감독은 "아시안게임이 걱정이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지니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최대 8경기 빠질 수가 있다. 타격이 크다"며 걱정을 드러냈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안게임 기간에 스테보마저 부상으로 빠졌다.
하 감독의 근심은 현실이 됐다. 전남은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6경기에서 1승1무4패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에도 대표팀 선수들을 즉시 활용하지 못했다. 휴식과 부상 등으로 배려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3경기에서 1무2패의 부진한 성적이 보태졌다.
올 시즌 단 한 번도 K리그 스플릿 상위그룹에 속하는 6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던 전남은 상-하위 스플릿으로 갈리는 마지막 1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처음으로 7위로 밀려났다. 아시안게임 후유증이 혹독하고 컸다.
그리고 전남은 상위 스플릿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13승5무14패, 승점 44점으로 리그 7위인 전남은 12승8무12패, 승점 44점의 6위 울산과 승점이 같다. 하지만 골득실에서 차이가 난다. 울산은 +4, 전남은 –5다. 한 경기에서 뒤집을 수 있는 골득실차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전남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남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외칠 때다. 시즌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의지, 마음가짐, 목표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경기에 나서야 한다.
전남은 26일 인천과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를 치른다. 전남이 첫 번째 목표로 잡았던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천에 승리를 거둔 후 울산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울산은 성남과 대결을 펼친다.
전남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올 시즌은 달라진 전남, 강력한 전남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이미지와 분위기를 마지막에 망쳐서는 안 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현 시점에서 전남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 기적도 최선을 다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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