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올해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성남FC는 모진 시간을 보냈다. 노장 박종환 감독을 선임한 것부터 말이 많았다. 박 감독이 선수 폭행 논란에 휘말리며 물러나 선수단 분위기는 최악으로 내달렸다. 이상윤, 이영진 두 감독대행을 거치는 과정은 코미디에 가까웠다. 팀 지휘봉을 맡길 감독(대행) 선임과 해임 과정에 절차란 없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으로 활동하던 김학범 감독을 모셔(?)오는데 성공한 것이 절묘한 한 수가 됐다. 최악의 성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나름의 비책이었다. 상근직 기술위원으로 위촉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던 김학범 감독은 성남 사령탑을 맡았다. 친정팀을 살려 달라는 구단의 읍소와 애원에 김 감독이 두 손을 들었다.
감독 선임과 해임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는 보이지 않았다. 성남 일화 시절 그렇게나 비판 받았던 '성적지상주의'의 굴레에서도 빠져 나오지 못한 모습 그대로였다. 신문선 사장은 김학범 감독을 영입하면서 자랑스럽게 팀을 강등권에서 빠져나오게 할 인물이라며 기대를 나타냈지만, 감독 선임 방식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성남의 이런 행보는 최종 결제권자인 구단주 이재명 성남시장의 시선에서 본다면 분명 옳지 않은 일이다. 정치가로서 이 시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스스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달아 놓았다. 인권운동, 노동운동에 앞장서며 사회의 부조리에 앞장선 과거를 압축한 것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시정 능력을 인정 받기도 했다.
SNS를 적극 활용하며 소통에 노력하고 있는 이 시장은 시즌 중반 문제만 일으키는 성남FC를 두고 시민구단 운영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구단주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의 폭행 논란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없이 넘어갔다. 성남시 측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단주에 보고만 하면 되는 사안"으로 축소하며 한 발 뒤로 빠졌다. 선수에 대한 폭행은 인권과 관련된 문제였지만 구단주인 이 시장은 구단이 해결하면 되는 일이라는 듯 물러섰다.
어려운 시즌을 보낸 성남이 최근 큰 성과를 이뤘다. FA컵 결승에 올라 FC서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김학범 감독의 전략과 선수들의 정신력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섰던 서울을 넘어섰다. 이재명 시장 역시 현장에서 결승전을 관전하며 SNS에 실시간 상황을 올렸다. 우승한 뒤에는 벅찬 감동을 표현했다. 한 SNS 사용자의 합리적 구단 운영을 바라는 글을 리트윗하기도 하며 우승 감동의 물결에 합류했다.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성남은 정규리그에서는 여전히 강등권이었다. FA컵 우승으로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을 했지만 쉬운 도전은 아니다. 26일 인천 유나이티드를 이기면서 강등 탈출권인 10위로 올라섰다. 이날 경기 현장에도 이재명 시장이 있었다. 리그 11위는 챌린지(2부리그) 플레이오프 승자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이 시장은 K리그의 제도를 충분히 숙지했는지 SNS에 관련한 상황들을 올려놓으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성남은 승리에 올인했다. 일주일 사이 세 차례 경기를 치르는 악조건에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선수단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빠른 체력 회복과 최상의 경기력을 위해 애를 썼다. 누구보다 땀의 가치를 아는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땀으로 보상 받겠다며 운동에만 집중했다.
선수단이 이렇게 총력전으로 시즌 마무리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시장은 28일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성남이 클래식에 잔류하지 못하고 챌린지 추락 시 ACL 출전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과 성남이 그동안 정규리그서 부당한 판정과 오심으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며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글이었다. 구체적인 오심 사례까지 열거하며 '오심으로 승점을 땄다면 강등은 안 당했을 것이다'라고 현재의 성남을 피해자처럼 포장했다.
한 발 더 나아갔다. '부정부패하고 불공정한 나라 운영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것처럼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리그 운영은 축구계를 포함한 체육계를 망치는 주범입니다. 승부조작 등 부정행위가 얼마나 한국 체육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는지 실제로 경험했다'라며 성남이 강등권으로 내려가 있는 것은 제도의 문제이자 프로축구계의 부조리한 상황 탓이라고 몰고갔다.
이 시장의 이런 글은 사실상 프로축구계를 매도한 것이다. 경기 종료 후에는 심판 판정을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상벌규정 제17조 1항(프로축구의 명예를 실수시키는 행위)에도 위배된다. 축구계가 합의해 만든 규정을 누구보다 이해가 빠른 이 시장이 스스로 어긴 셈이다. 그동안 K리그가 판정 개선을 위해 각종 첨단 장비 운영, 연수와 교육, 육성 등을 통해 노력해온 것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스포츠를 하대하는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글이기도 했다. 이 시장을 보좌하는 측근 인물들이 축구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심어줬는지 모르겠지만, 한 구단의 구단주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장은 최종전에 나서는 감독과 선수들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전장에 나서는 장수와 병사의 사기를 올리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리보면 ACL 출전 포기 시사 등은 선수들을 자극하는 일종의 심리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 내용이 다 틀렸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 혼란을 야기하고 말았다. 최종전 상대팀인 부산에는 결례까지 범했다.
구성원들이 오랜 논의 끝에 합의를 도출해 만든 것이 제도이고 규정이다. 그런 기본을 무시하거나 이해 부족을 드러낸 성남 구단주다. 성남의 시즌 최종전이 끝난 29일 오후 4시 상황이 궁금해진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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