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리기자] 드라마라고 다를 건 없었다.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고, 한낱 말단 회사원의 반전 따위는 없었다. 먼저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빠른 이 사회는 한 개인이 사회의 프레임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판타지는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드라마지만 현실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5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은 각자 다른 이유로 회사 안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원인터내셔널 속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장그래(임시완 분)는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열정을 쏟아왔던 아이템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오차장(이성민 분)과 김대리(김대명 분)는 계약직은 사업의 책임자가 될 수 없다는 회사의 결정에 반발하지만 아무런 돌파구도 찾지 못하고, 장그래는 출근 첫 날 동기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를 또 한 번 절감한다. 결국 장그래는 "시련도 셀프"라는 것을 인정하며 자신이 먼저 자신의 사업 아이템의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안영이(강소라 분)는 마부장(손종학 분)의 강압으로 본사의 호평을 받은 사업 아이템을 포기한다. "네가 직접 못 하겠다고 본사에 메일을 보내라"고 억지를 부린 마부장은 "참 건방지다"고 안영이를 몰아붙이고, 하대리(전석호 분)는 "승산이 없다. 무조건 물러서라는 것이 아니라 맞설 때와 아닐 때를 가리라는 것"이라고 안영이를 달랜다.
안영이를 두둔했던 정과장(정희태 분)은 마부장이 자신의 진급을 언급하자 오히려 안영이에게 "내가 부탁하자. 이번에 나 진급 심사다"라고 말한다. 결국 안영이는 "내 생각이 짧았다. 본사에 포기 메일을 보냈다"고 말해 마부장을 흡족케한다.
동기들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개벽이' 한석율(변요한 분)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대리(태인호 분)와의 관계에서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에 지친 한석율은 트레이드마크였던 오대오 가르마 헤어스타일도 바꿨고, 생기를 잃은 채 어두워졌다. 성대리의 무리한 결단에 현장 직원들이 회사를 찾아왔고, 한석율은 자신이 해결해보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맞기까지 했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미생'을 보는 시청자들은 유독 '눈물난다'는 감상평을 많이 내놓는다. 과연 '미생'의 무엇이 우리를 눈물나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각기 다른 시선으로 '미생'을 바라본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원인터내셔널은 판타지다. 어쩌면 낙하산으로 원인터내셔널에 뚝 떨어진 장그래의 삶마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이 될 수도 있고, 철강팀, 자원팀 등 치열한 회사원의 삶은 새로운 내일에 대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원동력이다.
회사원들은 각기 다른 지점에서 '미생'을 본다. 어떤 이는 장그래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며 눈물을 떨구고, 어떤 이는 오차장 같은 리더를 기대한다. 또 어떤 이는 마부장-성대리 등 치 떨리는 상사들의 모습에 이를 갈며 오열하고, 또 다른 이는 워킹맘 선차장(신은정 분)의 고군분투에 공감의 눈물을 쏟는다.
사표를 가슴에 품은 이도, 사표를 던진 이도 '미생' 속 차가운 현실에 눈물 짓는다. 오차장을 찾아온 선배는 식당을 차렸다가 몇 달 만에 문을 닫게 돼 퇴직금을 날린 것은 물론, 거액의 대출금까지 떠안은 후 좀 더 정치적으로 살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잠을 못 자겠다. 후회가 밀려와서.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밖이 시베리아 벌판처럼 추운 걸 알면서도, 지옥처럼 끔찍할 걸 알면서도 절박한 마음으로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혹은 '미생'을 보며 회사 생활은 다 그런 거라며 마음을 다잡고 하루에도 열두번씩 치솟는 사표의 욕구를 집어삼킬 이들에게 '미생'은 그저 장밋빛 미래를 속삭이지 않는다. 판타지와 현실의 간극을 교묘하게 오가는 '미생'의 지향점은 바로 우리 얘기다. 그래서 더 뼈저리게 아프고, 눈물난다.
시청자들은 '미생'을 보며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계약직의 현실에 좌절하는 장그래가, 선배의 이야기에 한숨을 내쉬는 오차장이, 성대리와의 갈등에 말수가 줄어든 한석율이 바로 우리 이야기가 됐을 때 '미생'은 더 이상 '당신들의 이야기'만으로는 남지 않는다.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된 '미생', 이제 단 4회만이 남았다.
조이뉴스24 /장진리기자 mari@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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