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리기자] 갈등은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양쪽 모두 원하지 않는 싸움이었다. 엉뚱한 자존심 싸움에 양쪽 모두 피해만 입었다. 아무도 웃지 못한 이상한 싸움의 결말이다.
해리성 정체 장애(다중인격)라는 같은 소재를 차용한 SBS 수목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 (극본 김지운 연출 조영광)와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 (극본 진수완 연출 김진만)는 엉뚱한 싸움의 피해자가 됐다.
시작은 '하이드 지킬, 나'의 원작인 웹툰 '지킬박사는 하이드씨'를 그린 작가 이충호의 SNS 글 때문이었다. '하이드 지킬, 나' 방송 전부터 꾸준히 '킬미 힐미'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내비쳤던 이충호 작가는 지난 21일 '킬미 힐미' 기자간담회에서 있었던 지성의 발언을 빌미 삼아 "이런…당당한 걸 보니, 아직 모르는구나. 곧 알려줄게. 본인이 도둑질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을"이라고 격한 반응을 드러냈다.
이 작가의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며 비난받은 '킬미 힐미'는 물론, '하이드 지킬, 나'까지 모두의 입장은 곤란해졌다. 서로에 대한 비교를 극도로 자제해왔던 양측은 원치 않게 강제로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
'킬미 힐미' 측은 '도둑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즉각 반박했다. '킬미 힐미' 측은 "우리 드라마는 진수완 작가가 오래 전에 이미 대본을 썼던 작품이다.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표절 시비에 선을 그었다.
'킬미 힐미'에서 주연을 맡은 지성 역시 억울한 상황이다. 지성은 지난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 등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소재를 그린 드라마가 연이어 제작되는 것에 대해 "요즘 사회 문제가 많다. 이런 것들을 아름답게 이겨내는 걸 보여줘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킬미 힐미', '하이드 지킬, 나' 양측과 그 어떤 상관도 없는 현명한 대답이었다. 이 작가의 언급으로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리게 된 지성 측은 "대응하지 않고 차분히 촬영에 임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가장 곤란해진 것은 이 작가의 웹툰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 '하이드 지킬, 나' 측이다. '하이드 지킬, 나'는 원작자의 의견 때문에 순식간에 싸움을 붙인 쪽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하이드 지킬, 나' 제작사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갈등 진화에 나섰다.
'하이드 지킬, 나' 에이치이앤엠·KPJ는 "두 드라마를 응원하는 입장에 있었기에 이번 일에 대해 당황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며 "'하이드 지킬, 나'는 이제 1회가 방송됐을 뿐이다. 앞으로 각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를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으며 두 작품을 응원하는 입장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일파만파 커진 논란에 거르지 않고 격앙된 발언을 쏟아냈던 이충호 작가는 한 발 물러섰다. 이충호 작가는 22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네요. 지금은 '지킬박사는 하이드씨'의 스페셜 웹툰 '하이드'의 마감 중입니다"라며 "솔직히 1초의 시간도 아까운 상황입니다. 마감부터 끝내고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겠습니다"라고 추후 공식 입장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제 막 첫방송을 시작한 '하이드 지킬, 나'는 뜻하지 않은 노이즈 마케팅 의혹에 휩싸였고, 지성-황정음-박서준의 명연기로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탔던 '킬미 힐미'는 말도 안 되는 표절 시비로 상처입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생긴 촌극이었다.
조이뉴스24 장진리기자 mari@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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