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8만 관중이 지켜볼 것이다.
8만 관중 가운데 대다수의 눈에 한국 축구 대표팀 슈틸리케호는 분명 '적'이다. 자신들의 환희와 영광을 위해 반드시 쓰러뜨려야만 하는 제물이다. 그들은 집주인이고 한국은 손님이다. 8만 관중은 손님을 불러놓고 성대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들의 안방에서 그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첫 번째 영광을 누리려 한다.
오는 31일 한국과 호주의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리는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 이 경기장은 8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이다. 결승전에는 8만 관중이 꽉 들어찰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대부분이 호주 팬들일 것이다. 개최국 호주의 홈팬들이 호주의 사상 첫 아시안컵 우승의 영광을 지켜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모여들 것이 자명하다.
개최국, 홈팀의 이점은 분명 있다. 가장 큰 이점이 홈팬들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들에게 있어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적일 수밖에 없다. 8만 관중 대부분이 호주팀에 연호하고 한국팀에 야유를 보낼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개최국 팀을, 그것도 결승전에서 만나는 한국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불행이 준우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최국은 분명 유리하지만 한편으로는 불리한 부분도 있다. 호주 대표팀에게는 홈팬들 앞에서 우승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감일 수 있다. 8만 관중 속에서 우승이 아니면 안 된다는 압박감 속에 그들은 서두르거나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 한국은 이런 부담감에서는 자유롭다.
또 개최국이 우승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아시안컵 역사 속에서도 개최국이 우승한 경우(6회)보다 개최국이 아닌 팀이 우승하는 경우(9회)가 더 많았다. 개최국이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거둔 것도 2번이나 된다. 그렇기에 한국이 우승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국이 55년 묵은 아시안컵 우승의 숙원을 풀기 위해서는 태극전사들이 일단 8만 관중을 '침묵'시켜야 한다. 집주인을 압도하는 경기력으로 8만 관중이 환호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말문이 막히게 만들어야 한다. 8만 관중이 침묵하면 침묵할수록 한국의 우승 가능성은 커진다.
그리고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 태극전사들은 8만 관중을 '분노'케 해야 한다. 호주 축구 역사상 가장 무서운 적이 돼야 한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잔인하게 무참히 홈팀 호주를 밟아줘야 한다. 자신들의 축제, 그것도 안방에서 열리는 축제를 가장 슬프고 아픈 축제로 만들어줘야 한다. 8만 관중을 분노하게 만든다면 한국은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다. 55년의 한도 풀 수 있다.
한국대표팀 스트라이커 이정협은 "8만 관중이 온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는 없다. 경기를 할 때마다 한국팬들도 많이 오셨다. 호주팬들이 많다는 것에 기가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홈팀 호주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원정 경기에서 원정팀이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 있다. 홈팬들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홈팬들은 당연히 원정팀을 적대한다. 원정팀이 아무리 좋은 경기력을 보여도 원정팀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원정팀이 최고의 경기력으로 홈팀을 압도하고, 홈팀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홈팬들은 원정팀과 함께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도 적대하게 된다. 홈팀, 원정팀을 함께 미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홈팀 선수들은 당황하고 민망해지며 평소 갖고 있던 힘을 잃게 된다. 홈팬들의 분노는 사실상 원정팀에게는 응원이 되는 것이다.
우승을 노리는 슈틸리케호가 호주의 8만 관중을 분노케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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