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신태용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아름답게' 시작을 했다.
신태용 감독은 이광종 감독의 뒤를 이어 올림픽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이광종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했고, 그 바통을 신태용 감독이 이어 받았다. 이 감독이 병마로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내려놓게 된 일은 안타깝지만 분명 아름다운 '이음'이었다.
신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A대표팀 코치로 선임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해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과 호흡도 잘 맞았고, 지난달 열린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결실도 함께 맺었다. 큰 탈이 나지 않는 한 러시아 월드컵까지 임기도 보장돼 있었다. 굳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신 감독은 "사실 올림픽 대표팀에 1%의 생각도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님이 오시면서 내 역할은 감독님을 잘 보좌해 월드컵에 진출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편안한 길이 앞에 놓여 있는데도 험난한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신 감독은 이광종 감독을 위해, 그리고 위기의 올림픽 대표팀을 위해, 크게는 한국 축구를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고심 끝에 신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을 맡아 어려운 길로 접어들었다.
신 감독은 "아시안컵 결승이 끝나고 이용수 위원장님에게 이광종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올림픽 대표팀이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는데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다.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고민했다. 편안한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지금 올림픽 대표팀의 처지가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과정을 알렸다.
신태용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시작은 그래서 아름답다. 신 감독 본인을 희생하고 헌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광종 감독과 올림픽 대표팀, 그리고 한국 축구를 위해 힘든 결정을 했다. 신 감독의 행보에 축구팬들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신 감독은 아름답게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시작했다. 시작이 아름다웠던 만큼 신태용호의 미래와 결과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시작이 아름답다고 해서 끝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 축구에서는 시작은 아름다웠지만 끝이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신 감독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고, 올림픽 대표팀이 부진하거나 소기의 성과와 결실을 얻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아름다웠던 시작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승적 선택, 희생과 헌신은 잊혀진다. 신 감독을 향해 날카로운 화살이 쏟아질 수 있다.
특히 신 감독에게는 과정을 밟아갈 여유가 없다. 과정을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오직 결실만을 얻어야 하는 대회가 눈앞에 있다. 이 대회에서 결실을 얻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오는 3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예선이 바로 그 결실을 내야만 하는 무대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H조에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브루나이와 함께 편성됐다. 이 대회 조별리그 1위 10개팀과 2위 5개 팀이 2016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AFC U-23 챔피언십 본선에 진출한다. U-23 본선이 2016 리우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다. 이 대회 3위 내에 들어야만 올림픽 본선 티켓이 주어진다.
즉, 3월 챔피언십 예선에서 탈락하면 한국의 리우 올림픽은 없다. 신 감독이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하는 1차 관문이다. 갑작스럽게 맡은 올림픽 대표팀이라 선수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무리 예선 상대가 약체라고 하지만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부담감 속에서 반드시 결실을 내야만 한다.
예선을 통과한다면 조금 여유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챔피언십 본선까지 1년도 남지 않았다. 팀을 완벽히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아시아 최강자들이 모두 나서는 대회다. 만만치 않은 대회가 될 것이다. 이광종 감독처럼 선수 파악이 모두 된 상태와 지금 신 감독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챔피언십 본선에서 3위 안에 들지 못한다면 역시 한국의 리우 올림픽은 없다. 올림픽 본선행이라는 성과도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리우 올림픽 본선을 가더라도 신 감독은 큰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대회,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사상 첫 동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맞는 다음 올림픽이 리우 대회다. 국민들은 더 높은 성과, 더 값진 결실을 원하게 된다. 눈높이가 높아졌다. 당연한 기대감이다. 이 역시 신 감독이 넘어야 할 산이다.
마지막으로 이광종 감독이 일궈온 팀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 압박감이 있다.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팀을 중간에 맡아, 제대로 된 모습과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 역시 신 감독에게 큰 상처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신 감독 역시 이런 상황들을 모두 파악하고 또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지휘봉을 잡았다. 신 감독은 도전을 택했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신 감독은 9일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잘 모른다. 선수들 파악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일단 리우 올림픽 메달 색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1차 예선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1차 관문을 통과하면 선수들을 더 알아가면서 나의 색깔을 입힐 것이다.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큰 성과였다. 그래서 다음 올림픽 감독이 참 힘들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될 지는 몰랐다. 동메달 다음 대회에서 본선에도 못 나가면 축구팬들에게 실망을 줄 것이다. 반드시 본선에 나갈 것이다. 이광종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잘 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신 감독, 시작은 아름다웠지만 그 다음은 냉혹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아름다운 시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실'이 필요하다. 올림픽 본선 탈락을 아름다운 도전으로 말할 사람은 없다. 결실을 내야 하는 곳에서는 결실을 내야 하는 것이 감독의 운명이다. 그렇기에 먼저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결실을 가져와야 한다.
갑작스럽게 맡게 된 역할, 짧은 시간 등 신 감독이 지금 처한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해주지는 않는다.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팀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내야 하는 상황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그렇기에 결실만으로 말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해내고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도 신 감독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올림픽 팀을 믿고 맡겼을 것이다. 한국 축구팬들도 그동안 좋은 결실을 많이 만들어온 신 감독이기에 지지하고 결과를 기다릴 것이다. 성남 일화 사령탑 시절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 등 감독으로서 토너먼트 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신 감독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올림픽 대표팀에서 마음껏 뽐낼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협회와 팬들의 이런 아름다운 신뢰를 올림픽 본선이라는 결실로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더 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위기에 빠진 올림픽 대표팀을 구할 이는 신태용 감독뿐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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