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김성근(73) 한화 감독은 현역 감독 중 유일한 70대다. 김응용(74) 전 한화 감독이 퇴임하면서 야구판의 최고 '어른'이 됐다.
김성근 감독은 2011시즌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3년 동안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지휘했다. 김 감독의 지도 아래 국내에도 처음으로 독립 구단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4년 만에 다시 프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최근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문 한화를 부활시키는 것이 김 감독에게 숙제로 주어졌다.
김 감독은 과거 SK 시절, 부임 첫해부터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6년 8개 구단 중 6위에 그쳤던 SK가 2007년 단번에 순위를 끌어올려 정상에 올라섰다. 이후 SK는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한화에서도 '김성근의 기적'이 일어날까. '야신'이 빚어낼 한화는 어떤 모습일까.
김성근 스타일
지난해 9월, 고양 원더스가 전격 해체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행보에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그동안 성적이 부진했던 팀에서 김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 감독의 거취는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었다. 그리고 김 감독은 한화와 계약 기간 3년, 총액 20억원에 도장을 찍으며 프로 사령탑 복귀를 알렸다. 1984년 OB 베어스를 시작으로 프로야구 지휘봉을 잡았던 김 감독의 7번째 맡는 프로팀이 한화다.
김 감독이 취임한 순간부터 한화는 뉴스의 중심에 섰다. 먼저 대형 투수 FA 삼인방 영입이 화제가 됐다. 삼성에서 FA 자격을 얻은 배영수와 권혁이 한화로 이적했고, KIA에서 뛰던 송은범은 김 감독과 재회했다. 여기에 2012년 삼성에서 14승 3패 평균자책점 3.97을 올린 탈보트, 2012년부터 3년 동안 롯데에서 38승 21패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한 유먼, 검증된 두 외국인투수를 영입했다.
마무리 훈련이 시작되면서 각종 포털 사이트는 한화의 기사들로 도배됐다. 정근우가 펑고를 받다가 지쳐 쓰러져 있는 모습, 4번 타자 김태균의 유니폼이 검은 흙으로 뒤덮인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화의 지옥훈련은 스프링캠프로 이어졌다. 휴식일이 정해져 있지만, 온전한 휴식은 보장되지 않았다. 휴식일에도 일부 선수들은 평소처럼 훈련했고, 스스로 훈련이 부족하다고 느낀 선수들은 저마다 운동장으로 향했다. 한화 선수들은 식사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단내나는 훈련을 매일 소화해야 했다.
누구도 김 감독의 '잠자리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 감독은 오키나와 재활훈련을 마치고 고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송은범과 이태양을 향해 "그동안 편했을 것"이라고 했다. "오키나와에서 편하게 훈련했으니 이제 내가 봐야지. 선수들은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한 말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팀 마운드를 이끌어갈 주전 선수들이기에 김 감독의 잣대는 더욱 엄격했다.
그 잣대는 누구에게든 동일하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도, 신인 선수도,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6일부터 캠프에 합류한 외국인 타자 모건은 일주일 만에 짐을 싸 한국으로 왔다. 서산에서 훈련을 이어가던 모건은 현재 오키나와 2군 캠프서 땀을 흘리고 있다.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오라"는 김 감독의 주문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탓이다. 전력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외국인 선수지만, 기준에 밑돌면 예외는 없다. 김 감독은 모건에게 귀국 지시를 함으로써 '김성근식 야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김성근의 한화, 기대와 우려 공존
한화는 2013년 김응용 감독에 이어 이번에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면서 프로야구 최고 명장과 연달아 손을 잡았다. 김응용 감독은 지난해까지 무려 1천567승을 올렸고, 김성근 감독은 통산 1천234승을 거뒀다. 역대 최다승 1, 2위 감독이 잇따라 한화를 맡은 것이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의 마지막은 초라했다. 김응용 감독이 처음 팀을 이끈 2013시즌, 한화는 프로야구 사상 첫 9위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정근우와 이용규를 한꺼번에 FA 영입했고, 내부 FA였던 이대수, 한상훈, 박정진을 잔류시키며 전력 강화를 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달라질 수 있을까. 김 감독은 가장 먼저 선수단 '정신 개조'에 나섰다. 패배의식은 물론 특권의식도 벗어던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승부는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과거에 잘했다는 생각은 버려라. 주전이고, 후보였던 것도 버려라. 개개인에게 매달리는 야구는 하지 않겠다"는 말에서 김성근 감독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몸도 바꿨다. 선수단은 분 단위로 쪼개진 캠프 일정표에 따라 움직이면서 그동안 몸에 새겨진 기억들을 지웠다.
강훈련의 성과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한화는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는 17일 SK와의 연습경기에서 0-7로 졌다. 8회 2사까지 안타를 한 개도 때려내지 못했을 정도로 크게 밀렸다. 1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는 2-18로 대패했고, 이튿날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도 8-19로 졌다. 무엇보다 최근 3경기에서 무려 44점을 내준 마운드가 가장 큰 문제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실책성 플레이도 김 감독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한화에 쏟아지는 기대와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 영입과 적극적인 선수 보강으로 단번에 2015시즌 우승 후보가 된 듯하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2009년부터 6년 동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팀이 단번에 기적같은 성적을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선수들은 이미 연습경기를 통해 현실을 깨닫고 있다.
반면 그 안에서 자란 희망도 뚜렷하다.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 더 이상 이름값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캠프를 통해 느꼈다. 2군 생활에 지쳤던 선수들은 실력으로 대등하게 싸울 기회를 잡았다.
훈련이 끝나면 녹초가 되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이렇게 힘들게 훈련했는데 성적이 안 나면 억울할 것 같다." 과거 SK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 시절 했던 말이다. 이제는 한화 훈련장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말이 됐다.
경기에서 지면 어김없이 보강 훈련이 이어진다. 70대의 노 감독은 더 많은 펑고를 치기 위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우리도 해내겠다"는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한 김 감독의 노력이다.
조이뉴스24 한상숙기자 sk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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