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1990년대 활약했던 가수들이 재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좀처럼 소식이 알려지지 않는 그룹이 있다. 바로 알앤비의 선구자 솔리드다. 김조한은 여전히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어 친숙하지만 멤버 정재윤, 이준은 상대적으로 추억의 이름이 됐다.
이준은 미국에서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하고 있고, 정재윤은 중화권에서 톱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했다. 리더였던 정재윤을 최근 만나 솔리드의 얘기를 들어 봤다.
1995년 '이 밤의 끝을 잡고'로 톱스타가 된 솔리드는 이듬해 발표한 정규 3집 앨범으로 더욱 기세를 올렸다.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는 '이 밤의 끝을 잡고'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고, '천생연분'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쭉 치고 올라갔다. 솔리드는 '대체불가'한 독보적인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재윤은 "밖엘 나갈 수 없어서 무대를 제외하곤 집 아니면 밴에만 있었다"고 인기 절정을 누릴 당시를 떠올렸다.
"집 앞에 24시간 팬들이 있었어요. 새벽 4~5시에 나가봐도 있었거던요. 집에는 언제 가나 싶었죠(웃음). 행사도 많았는데 부산 해운대서 행사를 하면 당시엔 버스가 쓰러질 정도로 사람들이 밀고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행사가 지방에 하나 있으면 3시간 내 서울로 다시 와야 해서 비행기도 타고 헬기도 타고 그랬어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도 시간에 맞춰지더라고요. 더 웃긴 건 팬들이 더 빨리 도착해 있는 거예요(웃음)."
스케줄이 살인적이었다. 하루 15개의 스케줄을 소하했던 적이 있을 정도다. 솔리드는 아침 9시에 나가서 하루 종일 무대에 서고 자정에 밴드 연습까지 한 뒤 집에 오면 아침 6시였다. 한 두 시간쯤 자고 나면 또 반복이었다.
"5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활동 끝나고 잠시 미국에 가는 일이 없었으면 쓰러졌을 거예요. 그 당시에 제 소원이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밴을 타고 지나가면서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면서 저기를 한 번 걸어가 봤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요새 가끔 로데오거리를 걸으면서 그때가 떠올라요."
솔리드의 마지막 앨범은 1997년 4집 '솔리데이트(Solidate)'다. 결과적으로 2,3집만큼 잘 되진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면 '끝이 아니기를'이 타이틀곡으로 나오지만 4집 타이틀곡은 솔리드스럽지 않은 '끼리 끼리'다. 솔리드 색깔이 잘 묻어난 '끝이 아니기를'을 전면에 내세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뒤늦게 '끝이 아니기를'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쯤 솔리드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솔리드가 알앤비 그룹이었지만 알앤비 발라드 류만 하는 것은 식상했어요. 뭘 보여줘야 하나 혼란스러웠죠. 여러 가지로 좀 그랬던 시기였어요. 결국 잘 안됐죠. 그 앨범에도 괜찮은 곡들이 있었는데 '끼리 끼리'는 사실 자연스럽지 못했어요."
솔리드의 당초 의도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음악을 완성했는데, 다른 작곡가들의 의견을 듣고 수정을 하다가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정재윤은 "1집은 순수했고, 2집은 여유있게 작업을 했다면, 4집은 점점 바빠지면서 상업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끼리 끼리'를 솔리드의 모든 곡 중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곡"이라고 했다.
솔리드가 은퇴를 결정한 건 기대에 못 미쳤던 4집의 결과 때문은 아니다. 세 멤버는 정규 2집 활동 때 언제쯤 그만두겠다는 걸 생각하기 시작했다. 좋은 기억일 때 적당히 물러서고 다른 걸 해보자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이들은 솔리드 이전에 본인들이 해오던 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정재윤은 본격적으로 프로듀서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준은 학교로 돌아갔다. 김조한은 솔리드 해체 이듬해부터 솔로 가수의 길을 걸어 왔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건 좀 더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었어요.", 어느 순간 '스타'가 되면서 본인들을 가둬두고 살아야 했던 솔리드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 사람은 2010년경 한국에서 만나 재결합 논의를 한 적이 있지만 각자 스케줄이 있어 흐지부지됐다. 정재윤은 "둘씩은 자주 보는데 셋이 한 번에 만나는 건 시간이 잘 안 맞더라"며 "개인적인 바람은 셋이서 같이 다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정재윤은 여전히 솔리드의 재결합 가능성을 열어 뒀다. 그는 "저나 조한이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준이가 너무 아깝다. 준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디제잉을 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거의 톱이었다. 지금도 그 실력을 다 유지하고 있다. 준이도 한 번 해보자 그런 얘기는 하고 있다. 계획은 할 수 없지만 다들 음악을 좋아하고 잘 하니까 어느 순간 훅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이뉴스24 /정병근기자 kafk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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