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흔히 정의윤(29)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애증의 대상'이다. LG 구단, 팬들은 정의윤에게 오랜 시간동안 큰 기대를 품었지만, 정의윤이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애증'의 관계는 화살표를 거꾸로 해도 성립한다. LG에게 정의윤이 그랬듯, 정의윤에게도 LG라는 팀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2005년 입단 후, 기대를 받았던 만큼 누구보다 팀에 대한 애정이 강했던 정의윤이다.
정의윤은 부산고 시절 엄청난 유망주였다. 만루에서 타석에 등장해도 상대팀이 고의4구로 걸러낼 정도였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많은 유망주들이 그랬듯, LG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프로에서는 아마추어 시절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신인이던 2005년 8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가능성을 확인시켰지만, 이는 아직까지 정의윤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으로 남아 있다.
상무에서 제대한 뒤 팀에 복귀한 2011년부터 정의윤은 다시 본격적인 성장기에 돌입했다. 팀에서도 여전히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2005년 함께 LG에 입단한 박병호를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시키면서도 정의윤만은 '트레이드 불가' 방침을 거두지 않았다.
2012년 타율 2할8푼3리 2홈런 27타점을 기록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던 정의윤은 2013년 김기태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시즌 막판 하락세로 타율이 2할7푼2리에 머물렀지만 데뷔 후 가장 많은 116경기에 출전했고, 주로 4번타자로 나서 5홈런 47타점을 보탰다.
2013년 5월26일 SK전. 정의윤은 0-0으로 팽팽히 맞서던 9회말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정의윤은 "다른 선수들은 LG를 떠나서 잘하는데, 나는 LG에 남아서 잘하고 싶다"고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이른바 '탈LG 효과' 없이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각오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정의윤은 지난해 시즌 중 양상문 감독이 부임하면서 점차 전력 외로 밀려나고 말았다. 양 감독이 같은 포지션의 채은성 등 새로운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의윤의 출전 기회가 줄어든 것. 올 시즌 역시 정의윤은 제한된 출전 기회 속 고전을 펼쳤다.
정의윤에게 LG는 10년 넘게 몸담은 구단이다. 3대3 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게 된 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정의윤은 주변의 축하 인사에 "이게 축하할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25일엔 "이제는 줄무늬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니…"라며 LG의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 것에 대한 큰 아쉬움도 드러냈다.
선수라면 누구나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한다. 아무리 팀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해도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정의윤에게도 LG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SK로 팀을 옮겼지만 정의윤에게는 한 가지 변함없는 마음이 있다.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것. LG에서도 항상 품고 있던 마음이다.
정의윤은 "진~짜 야구를 잘하고 싶다"며 "열심히 해서 김용희 감독님께 보답하겠다"고 SK 선수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LG에서 잘하고 싶었던 정의윤이 현 상황에서 걸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새로운 팀 'SK에서 잘하는 것'이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