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철인' 김병지(45, 전남 드래곤즈)는 실제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김병지는 26일 광양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선발로 나서 어김없이 골문을 지켰다. 이 경기로 김병지는 통산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날 김병지는 700경기 출전을 자축하는 의미로 등번호 700번을 달고 나왔다. 1992년 울산 현대를 통해 프로에 입문해 23년 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골키퍼라는 특수 포지션이기에 가능했던 대기록이다.
김병지가 걸어온 길은 곧 K리그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근래 들어서는 항상 은퇴 생각을 하면서도 '1년 더' 하며 버텨온 것이 어느새 700경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의 업적에 박수를 보내며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역사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현역 선수 중 김병지 외에는 이날 수원 삼성전 출전으로 399경기를 기록한 공격수 이동국(36, 전북 현대)이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그만큼 김병지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쉽게 가기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기록으로만 보면 김병지의 위대함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통산 무실점 228경기,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45년 3개월 18일), 153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 등 너무나 많다.
김병지와 친구인 김도훈(45)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동시대에 선수 생활을 했지만 김병지가 여기까지 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성실하고 몸 관리도 대단하다. 존경스러운 친구다. 코치들이 할 일이 없을 정도로 후배들도 잘 이끈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기록 유지를 위한 김병지의 자기 관리는 K리거는 물론 축구 선수라면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정도다. 24년 동안 체중 78.5㎏을 꾸준히 유지했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경기 당일을 제외하고 저녁 8시 이후 사적인 약속은 잡지 않았다.
김병지는 나이를 먹고 이룰 것을 이뤘으면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 때가 됐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특수 포지션인 골키퍼에서 너무 오래 주전을 지키면 후배 선수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의 밑에서 정성룡(수원 삼성), 김영광(서울 이랜드FC), 김승규(울산 현대) 등이 배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전남 노상래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은퇴를 생각했던 김병지를 만류하고 계속 뛰어주기를 바랐다. 김병지를 통해 후배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등 팀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전성기와 비교해 순발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위치 선정 등 노련함은 더욱 진해지고 있다.
김병지의 다음 목표는 777경기 출전이다. 물론 800경기 이상 뛰는 것도 얼마든지 도전 가능한 목표다. K리그 제도가 현행처럼 시즌 38경기 체제로 유지된다면 3년 안에 충분히 이룰 수 있다.
경남FC 사령탑 재임 시절 김병지와 함께했던 조광래 대구FC 단장은 "김병지와 같은 인물은 쉽게 나오기 어렵다. 성실함이 무엇인지 몸으로 항상 보여줬고 후배들은 그를 따랐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념비적인 700경기 출전이 된 이날 제주전에서 김병지는 어김없이 몸을 날렸다. 전반 4분 만에 이종호가 선제골을 넣으며 '삼촌'에게 700경기 축하 선물을 안겼다. 22분, 경남 시절 함께 뛰었던 윤빛가람에게 프리킥으로 실점한 뒤에는 수비수에게 다가가 다독이는 등 팀 리더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전남은 오르샤가 후반 2골을 터뜨리며 3-1로 승리, 김병지의 기록을 자축했다.
김병지의 전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40대 중반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같은 또래 아버지들에게 온몸으로 전했다. 그의 무한도전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지켜보는 것은 축구팬들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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