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지난 2월 허창수(67) GS그룹 회장은 신임 임원들을 상대로 "무조건 많은 골을 넣는 화려한 경기보다는 한 골을 넣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슈틸리케 감독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배우자. 슈틸리케 감독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인재를 발굴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수평적인 소통으로 팀워크를 일궜다"라고 말했다.
허 회장이 축구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을 언급한 것은 슈틸리케가 1월 호주 아시아안컵에서 성과를 낸 실용주의 정신 때문이었다.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 등 주전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도 남은 선수들로 시너지 효과를 냈고 무실점으로 결승까지 오르며 단단해진 대표팀의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한국은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연장 혈투를 벌인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실용주의 리더십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실망스런 성적을 거두고 귀국길에 엿 세례까지 받았던 대표팀의 위상을 슈틸리케가 아시안컵을 통해 단기간에 다시 끌어 올렸던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12월 제주도 전지훈련에 K리거와 중국,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을 대거 불렀다. 올 1월 아시안컵과 8월 동아시안컵을 동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가대표의 벽을 낮췄다. 대표팀이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은 누구든 도전할 수 있게 했다. K리그 클래식은 물론 챌린지(2부리그), 대학 리그(U 리그)와 초중고 리그까지 두루 살펴보는 등 선수 보는 눈을 넓혔다. 당연히 가능성을 보여주기만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선수들은 서로 기량을 과시하려 각자의 소속팀에서 애를 썼다.
이정협(부산 아이파크, 대표 발탁 당시 상주 상무)의 대표팀 발탁과 성장은 2부리거라는 편견을 깨는 데 일조했다. 3월 우즈베키스탄,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는 이재성(전북 현대)이 눈에 띄는 대표팀 자원으로 등장했고, 8월 동아시안컵을 통해서는 이종호(전남 드래곤즈), 김승대(포항 스틸러스)의 실력을 확인했다. 권창훈(수원 삼성)은 동아시안컵을 기반으로 이어진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급성장하며 슈틸리케호의 새로운 황태자로 떠올랐다.
K리그에서 건져 올린 선수들의 연이은 성공은 대표팀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각 포지션마다 최소 2배수의 경쟁 체제가 구축됐다.
선수들과의 심리전에도 능한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 호주와의 결승전을 앞두고는 교민들의 인터뷰 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주며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은 뒤 응원 온 팬들에게 뛰어가 포효하는 세리머니는 상징하는 바가 컸다.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카타르SC)에게는 2014~2015 시즌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세 장면을 편집해 보여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바르셀로나 수비형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움직임을 통해 한국영의 대표팀내 임무를 이해시켰다.
동아시안컵에서는 중국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중국이 우승후보다"라는 말로 노련한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언론을 상대로는 중국을 띄워주는 대신 선수들에게는 도전의식을 심어주며 믿음을 나타냈다. 이런 자신감 있는 리더 덕분에 선수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각자의 포지션에서 제 플레이를 펼쳐 우승을 일궈냈다. 대표팀의 좋은 흐름은 연말까지 계속됐고 16승 3무 1패, 승률 80%의 강력한 대표팀으로 재탄생한 모습을 보여줬다.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공정하게 대표팀을 관리한 슈틸리케 감독의 지난 1년이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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