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태권도는 올림픽에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는 오직 심판 판정으로 점수를 매겼다. 심판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승부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계속 비판을 받았다.
베이징 대회에서는 엔젤 마토스(쿠바)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발차기 공격을 시도해 영구 제명되는 일도 벌어졌다. 있을 수 없는 비신사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태권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잠재해 있다가 터져버린 셈이다.
고민하던 세계태권도연맹(WTF)은 공정한 판정을 위해 전자호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6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WTF 월드컵 태권도 단체선수권대회에 전자호구가 첫 등장했다. 2009 덴마크 세계선수권대회,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마다 첫 선을 보였다.
올림픽에서는 2012 런던 대회에 첫 등장했는데 이 과정 자체도 매끄럽지 못했다. 공식 전자호구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이 시끄러웠다.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사용하는 전자호구를 두고 서로 눈치 싸움을 벌였고 홍역 끝에 업체가 선정됐다.
전세계 스포츠 팬들의 눈길이 쏠리는 올림픽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와 재미있는 경기가 필수다. 몸통에 전자호구를 착용하자 정확한 공격을 구사하는 쪽으로 기술이 집중됐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 몸통만 공격하니 경기 자체가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WTF는 올 리우 올림픽에서는 전자 헤드기어까지 도입했다. 그동안 얼굴 공격을 두고 3점, 또는 4점 등 점수에 대해 애매한 면이 있었던 문제점을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서다. 발목 센서를 최대 11개로 늘려 득점을 더 정확하게 체크할 수 있도록 보완에 나섰다. 경기장 규격도 기존 12×12m에서 8×8m로 줄여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를 유도했다. 넘어지거나 뒤로 도망가면 처음에는 경고, 두 번째는 상대 선수에게 1점을 준다.
배점도 개정했다. 몸통 공격 1점, 몸통 회전 공격 2점, 머리 공격 3점, 머리 회전 공격 4점에서 몸통 회전 공격 배점을 2점에서 3점으로 올렸다. 동작이 화려한 발차기 공격을 많이 구사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회전 공격의 경우 부심 세 명 중 두 명이 1초 이내에 점수를 채점기에 입력하면 합산해서 점수가 나온다.
태권도는 많은 변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경기가 지루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내 누리꾼들은 "너무 수비적으로 변한 것 같다. 공격에 대한 방어만 보인다"라는 댓글들을 쏟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자호구는 높은 충격을 가해야 득점이 인정된다. 가슴 공격을 계속 시도해도 득점이 되지 않으니 헤드기어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 49㎏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소희(22,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8강 종료 4초 전 3-5로 뒤지다 3점짜리 머리 공격을 성공해 6-5로 뒤집었다.
반대로 남자 68kg급의 이대훈(24, 한국가스공사)은 8강전에서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에게 머리 공격을 세 차례나 허용하며 8-11로 패했다. 몸통 공격을 줄기차게 시도해도 득점이 잘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몸통 공격 이후 아부가우시의 머리 공격을 방어하지 못하며 무너졌다.
다른 경기에서도 서로 대치해 있다가 머리만 노리는 공격이 많이 나왔다. 회전을 통한 공격이 성공할 경우 단번에 역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점수를 앞서고 있는 선수는 이를 피하기 위해 경고나 감점을 받더라도 시간을 끄는 전략을 구사했다. 아부가우시도 리드를 잡자 적절히 넘어지며 이대훈의 애간장을 태웠다.
태권도가 지루함을 어느 정도 없애기 위해 도입한 전자호구지만 양면성이 드러나고 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유지에 대한 물음표도 여전하다. 그 와중에 한국은 달라진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종주국으로서의 체면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태권도의 발전과 새로운 흐름에 대한 적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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