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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삶과 죽음에 대하여(인터뷰)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건 대체 뭔가"

[권혜림기자] 배우 윤여정이 빈곤에 내몰린 노인의 삶을 그려냈다. '박카스 아줌마'라는 타이틀로 사회적 이슈가 됐던 노인 성매매 문제를 비롯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낸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 관객을 만난다. 일흔의 나이에 연기 작업을 통해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된 윤여정은 때로 괴롭고 우울했지만, 극 중 인물이 처한 갈등과 고민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몰입했다.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개봉을 앞둔 배우 윤여정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죽여주는 여자'는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며 먹고 사는 여자 소영(윤여정 분)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소영과 함께 한 건물에서 살아가는 트렌스젠더와 장애인, 코피노 아이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영화는 풍성한 인물 구성에 더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건강한 시선도 획득했다.

극 중 소영 역을 맡은 윤여정은 이날 '죽여주는 여자'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가까운 친구에게 들었던 걱정섞인 말을 들려줬다. 이 영화가 제목 탓에 노인 성매매 문제만을 다룬 작품일 것이라 오해한 친구가 윤여정의 출연을 만류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친구는 최근 VIP에서 영화의 완성본을 본 뒤 "가치있는 일을 했다"며 윤여정을 격려했다.

"어려운 이야기를 이재용 감독이 건드렸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터부시하니까요. 성매매라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있는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성매매만 다룬 영화인 줄로 알고 있었어요. 내 친구도 이 영화를 한다고 했더니 하지말라고 하더라고요. '곱게 늙어야지'라고요.(웃음) 그런데 그 친구를 시사에 초대했더니 '잘 만들었고, 잘 봤다'고 해줬어요. 요즘 인터뷰가 많아 힘들다고 했더니 '가치있는 일을 했으니 인터뷰도 열심히 하고 감독도 열심히 응원해주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응원이 가장 크게 다가왔어요."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던 노인 성매매 실태에 대해, 윤여정은 뉴스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뉴스나 신문에서 보던 사건의 주인공이 돼 이를 재현하는 일에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수반됐다. 윤여정은 "나이가 들면 이미 많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도 들고, 끔찍한 세상을 자세히 알고 싶기보단 피하고 싶다"며 "이만큼 사는 것도 애쓰고 살았는데, 내가 정책인도 아니고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인도 못 되는데 더 힘든 세상을 알아서 무엇 하겠냐는 생각인 것"이라고 답했다.

"아 영화를 찍으면서 우울증이 왔어요. 그 사람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도 나처럼 누구의 소중한 딸로 태어난 것인데, 거기까지 내몰릴 때는 할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예요. 손가락질 받는, 법적으로도 금지된 일이잖아요. 나는 70세에도 연기라는 기술이 있어 축복 아래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리고 돈도 없다면, 학력도 뭣도 다 소용이 없거든요. 노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든 사람들을 고용인들이 피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죠."

윤여정은 영화 속 대사를 언급하며 "속사정을 모르고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듯, 그들에게도 그런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성적 서비스를 하는 장면들을 연기하면서는 내가 죽기 전까지 몰라도 되는 일을 알아가면서 우울증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대체 뭔가. 산다는 것에 대해 말로는 다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현장을 맞닥뜨리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재용 감독에 따르면 소영은 1970년대 동두천에서 일했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그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서 살겠다는 희망 같은 것이겠죠. 감독과 내 해석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영화에서 도망치는 아이를 붙잡는 것은 이 여자의 죄의식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대책없이 자신도 먹고 살기 힘든데 아이를 끌어안는 거죠. 영화 속 가족들(한 건물에 사는 장애를 가진 남성과 트렌스젠더 여성)은 다들 서럽게 사는, 소외되어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잖아요. 함께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지만 누구 하나 '쟤는 왜 데려와서'라는 투의 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들을 따뜻하게 그린 것은 이재용 감독에 대해 내가 믿었던 점이었어요. 그 시선이 너무 좋았어요."

극 중 소영은 성매매를 하다 알게 된 인연들 속에서 이제 그만 세상을 떠나고 싶은 노인들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배우 전무송이 영화를 촬영하다 소영을 가리켜 "이 여자는 살인자가 아냐, 천사야"라고 언급했다고 밝혔던 윤여정은 최근 유시민 전 장관을 시사회에 초대했다고 알리며 그의 감상평 역시 들려줬다.

"유시민 씨가 간단히 풀어서 이야기해주는데, 이 영화에 노인 빈곤사의 세 가지 요인이 모두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첫 번째로 중풍이 와서 독립 생활을 할 수 없게 돼 분개로 인한 자존감의 파괴, 두 번째는 치매로 인한 자아상실의 공포, 세 번째는 사랑하는 상대를 잃은 절대 고독이라고 해요."

윤여정은 이 영화가 고령화 시대, 노인 빈곤화의 시대에 작은 메시지를 남기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세상이 하루 아침에 뒤집어질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 세대에는 이렇게까지 되는 할머니가 더이상 없길, 빈곤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사람이 내몰리는 일만은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이가 70살이 되니,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라고 느껴요. 이런 고령화 시대에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축복이고 감사라는 것을 느끼죠. 일을 못하게 되면 나의 자존감이 없어질테니까요. 나는 윤여정이라는 배우로 살아온 세월이 많으니 그걸 못하게 됐을 때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잖아요. 해결 안나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친구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물론 죽을 때 아름답지 못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세대에는 이렇게까지 되는 할머니가 없길 바라는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도 영화를 만든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죽여주는 여자'는 오는 10월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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