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피겨 여왕' 김연아의 은퇴 이후 새 얼굴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연아를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는 박소연(19, 단국대), 최다빈(16, 수리고), 김나현(16, 과천고) 등이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권 진입 여부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어 있다.
이 때문에 김연아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장면을 보고 자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이른바 '김연아 키즈'들에게 기대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영(12, 문원초), 김예림(13, 도장중), 임은수(13, 한강중) 등 신예들이 대표적인 유망주들이다. 창간 12주년을 맞이한 조이뉴스24는 이들 가운데 표현력이 좋기로 소문난 임은수를 만나 꿈과 희망을 함께 노래했다.
[이성필기자] 한국 엘리트 체육의 산실 태릉 선추촌에도 조용히 가을이 왔고 낙엽도 떨어지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에 날리는 낙엽 소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신호였다.
그러나 사계절 한기가 도는 빙상장 안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다. 그 곳에서 임은수는 드미트리 드미트렌코(43, 우크라이나) 코치의 날카로운 시선에 몸을 맡기며 다양한 점프를 시도하고 표현력을 다듬고 있었다. 한 번 시도해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집중력을 보여줬다.
김연아 이후 국제대회 쇼트프로그램 최고점, 기대감 높여
기자가 임은수를 만난 것은 지난달 30일이었다. 같은 달 17일 회장배 랭킹대회에서 유영(181.42점), 김나현(180.66점)에 이어 임은수는 174.57점을 받아 3위로 대회를 마감한 뒤였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랭킹 대회 전에 나선 그랑프리 대회였다. 10월 9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에서 임은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대회에서 임은수는 쇼트프로그램 63.83점을 얻어 김연아의 은퇴 이후 국제대회 최고 점수를 기록해 주목을 받았다.
5차 대회에서 4위에 오르며 포인트 9점을 얻은 임은수는 7차 대회 3위로 11점을 더 얻어 총점 20점으로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나선 153명 중 11위에 올랐다. 6위까지 주어지는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권 확보는 실패했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은 많다. B급 대회에 계속 출전해 기술을 연마해야 하고 유망주가 많아지면서 국내 경쟁도 치열한 내년 1월 피겨종합선수권대회 준비도 신경써야 한다. 종합선수권대회 결과에 따라 태극마크 지속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평소 잘 걸리지 않는 감기에 걸리면서도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다.
임은수는 2009년 피겨에 입문했다. 6살 때였다. 몸이 약해서 운동을 시켜보면 어떨까 싶었던 임은수의 부모는 김연아가 국제대회에서 눈부신 성적을 내며 피겨 붐이 일자 자연스럽게 스케이트 부츠를 신겼다. 임은수는 "어린 시절 (김)연아 언니의 연기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상도 화려해 보여서 그것을 입고 싶었고… 어느새 제가 빙판 위에 서 있더라고요"라며 웃었다.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이상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걷기 시작한 임은수다. 힘들지 않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솔직히 재미가 없지만, 경기를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해요. 하나씩 해나가면 잘 되고 열심히 하게 되니 집중하게 되더라고요"라며 마음을 다잡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아 키즈'로 불리며 기대를 받는 것은 어떨까. 대한빙상경기연맹 고위 관계자는 "훈련을 지켜보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손짓부터 표현력을 위한 움직임까지 하나라도 더 다듬으려는 노력이 보이더라. 경쟁하는 또래 선수들이 많아서 심적인 부담이 있을 것이고 주변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아 부담이 클 텐데 개의치 않는다"라고 전했다.
김연아 키즈? "연아 언니가 해왔던 것들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아요"
임은수의 마음도 그럴까. 그는 "내 이름이 잘 알려지는지는 모르겠어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피겨만 하고 있어요. 사실 (김)연아 언니 이후 처음으로 쇼트프로그램 최고점을 받았다는 것도 몰랐어요. 연아 언니 시절이랑 지금이랑 채점 기준도 달라졌고 구사하는 기술도 다르니까요. 그래서 아직은 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라며 어린 선수다운, 또 어쩌면 어린 선수답지 않은 답을 했다.
오히려 임은수는 "아직은 (김)연아 언니가 해왔던 것들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아요. 제가 연아 언니 키즈라고 하기에는 멀었죠"라며 쫓아가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크게 긴장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딱히 긴장을 푸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계속 호흡만 길게 해요. 대회에 나서야 하니 당연히 떨리기는 하는데 특별한 무엇인가를 한다고 해서 긴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너무 급한 마음만 먹지 않게 호흡만 해요"라고 자신만의 긴장 푸는 비법을 이야기했다.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고난도의 기술 구사로 상대를 제압해 '강심장'이라 불렸던 김연아의 대범함과 많이 닮았다.
함께 연습하는 유영이나 김예림 등과는 너무 익숙한 사이가 됐다. 그는 "(훈련이)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훈련을 해오고 그래서 그런지 스케이팅을 하면 어떤 것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요. 그냥 서로의 것에 집중해요"라며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서로에 대해 워낙 잘 알고 있다 보니 상대의 장점을 흡수하고 싶은 것도 있다. 임은수는 "(유)영이는 정말 빠릿빠릿하고 (김)예림이는 침착한 모습이 좋은 것 같아요. 그들의 장점을 가지고 온다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보완을 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은근히 욕심을 드러냈다.
자기만의 스타일도 확실하다. 의상은 검은색이 좋단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깔끔한 것을 선호한다. 그는 "빨간색이나 분홍색, 갈색 등은 좋아하지 않아요. 검은색을 좋아해요다. 그런데 검은색이 쇼트나 프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편하게 하려고 하죠"라고 전했다.
기술도 보완해야 하고 경험도 더 쌓아야 하고…
은근히 욕심이 많은 임은수는 아직 준비 중이고 성장해야 하는 어린 선수다. 키는 지난 1년 사이 5㎝는 더 컸다. 그는 "점프의 높이도 보완해야 하고 성공률도 높여야 해요. 에지나 스텝도 좀 더 잘 해야 하고요. 제 무기라면 에지의 활용인데 앞으로 좀 더 연습해야 할 것 같아요. 무릎이나 발목도 잘 활용해야 하고요"라며 자가 진단을 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에 아쉽게 진출하지 못했던 것도 아직은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처음에는 파이널에 나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외국 선수들과 비교하면 기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연습해야 하고 기술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성인 국가대표까지 되려면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국제대회 경험을 좀 더 하면 나아질 것 같아요. 외국 선수들은 국제대회 경험자가 많더라고요. 러시아 선수들은 혼자 와서도 잘 하더라고요."
빙판 위에서 어려운 연기를 펼치는 임은수는 꿈많은 소녀이자 중학생이기도 하다. 그런데 힘든 연습을 하며 성장하려면 자신의 생활 일부를 버려야 한다. 평범함이 그립지는 않을까.
<②편에 계속…>
조이뉴스24 태릉=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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